역사적 이야기

금단의 심장에 메스를 들이다 — 19세기 심장수술 선구자들의 도전

고대 의사들도 넘지 못한 마지막 관문, '심장'

고대 외과의사들은 이미 놀라운 업적을 남긴 바 있습니다. 두개골을 절개하는 트레파닝 수술에 성공했고, 백내장을 제거했으며, 혈관을 묶어 출혈을 멎게 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곳, 그들은 끝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바로 심장입니다. 과연 누가 처음으로 심장에 메스를 들이댔을까요?

토머스 모리스는 저서 『마음의 문제: 열한 번의 수술로 본 심장의 역사』에서 수백 년간 심장은 다른 장기처럼 다뤄지지 않고 "신비롭고 깊은 의미를 지닌 존재"로 여겨졌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인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입니다. 바로 그 무렵,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이 손상된 환자를 살리려는 최초의 시도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심장수술? 그런데 정말일까?

오래된 의학 교과서들은 1872년 런던의 외과의 조지 칼렌더(George Callender)가 거둔 성공을 최초의 심장수술로 기록했습니다. 환자는 양철장이로, 열흘쯤 전에 몸싸움을 벌인 뒤 심한 가슴 통증과 두근거림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습니다. 『마음의 문제』는 이렇게 전합니다.

칼렌더는 갈비뼈 사이에 미세하게 돌출된 부분을 발견하고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클로로포름으로 환자를 잠재운 뒤 가슴 근육에 작은 절개를 가했고, 놀랍게도 그 안에서 심장 박동마다 떨리는 작은 금속 물체를 보았다. 그는 집게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꺼냈다. 거의 5센티미터에 달하는 바늘이 남자의 가슴에서 나왔고, 그것은 분명 심장 근육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바늘은 환자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불운한 날 그는 바늘을 셔츠에 꽂아 두었고, 몸싸움 중에 바늘이 가슴을 꿰뚫어 버린 것입니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이었죠.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칼렌더는 상당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모리스가 강조하듯, 이 과정에서 의사는 심장 그 자체를 노출시키지도, 표면을 절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금단의 심장에 메스를 들이다 — 19세기 심장수술 선구자들의 도전

초기 의학 교과서들은 최초의 성공적인 심장수술을 조지 칼렌더 박사의 공으로 돌렸습니다. (삽화)

진짜 선구자는 실험토끼부터

그렇다면 심장을 직접 만진 최초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주인공은 단치히(현 폴란드 그단스크) 출신의 의사 블록(Block)이었습니다. 다만 그의 메스 아래에 놓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토끼였습니다. 토끼는 여러 차례의 수술을 무사히 견뎌냈습니다. 이 의사는 1882년 독일외과학회 회의에서 자신의 성과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심장 근육이 생각보다 놀랍도록 질기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의사들은 이 장기가 극도로 섬세해서 "아주 사소한 조작만으로도 리듬이 무너져 즉사할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사람에게 같은 시술을 성공시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오슬로의 악셀 카펠렌(Axel Cappelen)이 그 문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1894년, 가슴에 칼에 찔린 한 남자가 그의 병동으로 실려 왔고, 카펠렌은 수술을 결행합니다. 토머스 모리스의 기록에 따르면:

클로로포름으로 환자를 잠재우고 가슴을 열자 카펠렌은 심각한 내출혈을 확인했다. 심장 좌심실에 약 2센티미터 길이의 상처가 있었고, 외과의는 카훗(catgut) 봉합사로 그것을 꿰매기 시작했다. 심장이 수축할 때 갑자기 튀어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는 바늘땅을 심장 박동에 맞춰 하나하나 내렸다.

치료 자체는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환자는 눈을 떴고 회복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틀 뒤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검 결과, 카펠렌이 수술 중 동맥의 작은 상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환자는 그 상처로 출혈 과다로 사망한 것이죠.

2년 후 로마에서 칼에 찔린 환자를 구하려던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감염이 원인이었습니다. 결국 최초의 영예와 동료들의 찬사는 프랑크푸르트의 외과의 루드비히 렌(Ludwig Rehn)에게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도전, 마침내 빛을 보다

1896년 9월 7일 깊은 밤, 칼에 찔린 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렌이 일하던 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렌은 다음 날 아침에야 부상자를 볼 수 있었는데, 상태는 위독했습니다. 독일의 이 외과의는 상처를 함께 검진하던 동료와 상의 끝에, 환자를 살릴 유일한 희망은 수술뿐이라 판단했습니다. 토머스 모리스는 수술의 경과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렌은 흉강에 들어가 심낭에 난 작은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넓혔다. 심장 부위에서는 피와 핏덩이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외과의는 곧 심장 근육에 거의 1.5센티미터 크기의 상처를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눌러 출혈을 멈췄지만, 심장이 수축할 때마다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피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렌은 신속히 상처를 비단실로 꿰매기로 결정했다. 다루기 쉽고 체내에서 흡수되지 않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심장 박동과 박동 사이 틈을 타 상처 양쪽에 바늘을 찔러 넣던 그는, 심장이 잠시 멎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하지만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세 개의 봉합이 놓이자 출혈은 멎었다. "심장은 계속 뛰었고,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금단의 심장에 메스를 들이다 — 19세기 심장수술 선구자들의 도전

루드비히 렌, 바로 그가 최초의 성공적인 심장수술을 집도한 사람입니다.

수술은 아무 탈 없이 끝났습니다. 환자는 몇 주간 입원해야 했지만,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퇴원했습니다. 세계는 이듬해 4월, 렌이 베를린에서 열린 외과의 학회에서 이 시술을 보고하면서야 이 획기적인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의 증거로 그는 자신이 살린 윌헬름 유스투스(Wilhelm Justus)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언론은 문자 그대로 열광했습니다. 특파원들은 특종을 전하느라 급한 나머지 의사의 이름마저 잘못 전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과 뉴질랜드의 헤드라인은 이 의학적 승리를 어느 "레헤(Dr. Rehe) 박사"의 공로로 돌렸고, 영국 독자들은 "렐린(Herr Relin)" 씨의 수술 보도를 붉은 얼굴로 읽어야 했다.

렌의 성공은 위대한 혁명의 서막이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심장외과 의사들은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을 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죽음이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던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 토머스 모리스, 『마음의 문제: 열한 번의 수술로 본 심장의 역사(Matters of the Heart)』, Wydawnictwo Literacki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