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블레인 대학살: 영국 총기 규제의 역사를 바꾼 비극
1996년 3월 13일, 한 광기 어린 남자가 던블레인 초등학교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총을 쏘았고, 16명의 아이들을 냉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이 날은 영국 전후 역사상 가장 비참한 날짜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던블레인 대학살로부터 2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학교 총기 난사 사건들
몇 주 전, 세계 언론은 또다시 미국에서 발생한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여파를 보도해야 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미시간주 옥스퍼드 타운십에서 일어났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사건이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는 헤아리기조차 어렵습니다. 뉴타운(2012년), 블랙스버그(2007년), 콜럼바인(1998년)이 그중 가장 참혹한 사례들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총기 규제 강화를 약속해 왔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약속들은 장례식장에서의 허풍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세계에는 총기를 이용한 대량 살인이 총기 소유 권한의 급진적 강화로 이어진 국가들도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국입니다.
영국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반 경찰관은 보통 총기를 소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봤을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말까지 민간인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총기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교 총기 사건 중 하나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이 벌인 캠페인 이후, 총기 판매와 소유에 관한 극도로 엄격한 규칙이 도입되었습니다.
범인의 초상
던블레인은 스코틀랜드 중부에 위치한 그림 같은 작은 마을입니다. 현재 약 1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곳은 주로 마을에 있는 역사적인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봄, 이 상황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던블레인 초등학교 입구
던블레인을 무의미하고 잔혹한 폭력의 상징으로 만든 인물은 토머스 해밀턴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동네에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역 스카우트 팀의 지도자였지만, 여러 가지 아동 성범죄 혐의로 고발된 바 있었습니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그를 기소하지 않았지만, 해밀턴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진행하는 유스 클럽 네트워크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센터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던블레인 출신 영국 테니스 선수 앤디 머레이도 이곳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한편 해밀턴은 무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아동 성범죄 행위로 되돌아갔습니다. 그의 애매한 행동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클럽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했고,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다시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해밀턴이 왜 던블레인 초등학교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평판을 더럽히고 아동 성범죄자로 낙인찍은 것에 대한 복수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확실히 밝혀진 것은 그가 공격 당시 의식이 명료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경찰 수사관들은 그의 정신 이상 가능성과 알코올 또는 약물 영향 가능성을 배제했습니다.
스노우드롭 위의 피
1996년 3월 13일 오전 9시 30분, 해밀턴은 던블레인 초등학교 앞에 차를 주차하고 학교로 연결된 전화선을 절단했습니다. 그런 다음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합법적으로 구매한 스미스 앤 웨슨 M19 리볼버 두 자루, 브라우닝 하이 파워 권총 두 자루, 그리고 743발의 탄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발포하기 전에 그는 사격용 보안경과 귀마개를 착용할 시간까지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체육 수업을 준비하던 1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5~6세 아동 28명과 성인 보호자 3명: 아일린 해릴드, 그웬 메이어, 메리 블레이크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그들을 향해 무작위로 총을 쏘았습니다. 두 명의 교사와 아이들은 체육 기구 보관함에 숨을 수 있었습니다. 43세의 그웬 메이어는 학생들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려 했습니다. 범인은 그녀에게 6발을 쐈습니다. 그 교사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태아 모두 광인의 희생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범인은 합법적으로 구매한 스미스 앤 웨슨 M19 리볼버 두 자루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이후 사살 현장이 보이는 방에 앉아 있던 학생들에게 총을 쏘았습니다. 당시 11세였던 스티븐 호퍼는 언론에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나는 총을 든 남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몸을 돌려 발포하자 나는 그저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총소리는 매우 빨랐고, 마치 누군가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몇 초간 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감정에 따르면 해밀턴은 체육관으로 돌아와 아직 살아 있던 아이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마친 후 총구를 입에 물고 자살했습니다. 대학살은 단 4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범인은 100발이 넘는 탄약을 발사해 18명을 살해했습니다. 성인 2명(자신 포함), 5세 아동 14명, 6세 아동 1명, 그리고 그웬 메이어의 태아까지였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싸움
던블레인에서 일어난 비극의 소식은 영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건 다음 날, 학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 진정한 악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애도에 잠겼습니다. 희생 아이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장례식에는 왕실 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이 거대한 슬픔은 희생자 부모들이 총기 접근을 규제하는 법 개정을 위한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은 믹 노스였습니다. 그는 5살 딸 소피가 이 공격으로 살해당한 생화학자였습니다. 노스는 연구 경력을 접고 총기 규제 네트워크(Gun Control Network)를 설립해 당시 법 개혁을 위한 로비 활동을 벌였습니다. 동시에 희생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주도하는 캠페인도 진행되었습니다. 그 목표는 영국 전역에서 총기 판매와 소유에 상당한 제한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캠페인의 상징은 스코틀랜드에서 초봄에 피는 유일한 꽃인 스노우드롭(설국화)이었습니다.

대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
스노우드롭 캠페인이 준비한 청원은 몇 달 만에 100만 명이 넘는 영국 시민의 서명을 받아 의회에 제출되었습니다. 곧이어 소위 컬렌 보고서가 발간되었습니다. 정부를 위해 작성된 이 문서는 예상되는 개혁에 관한 여러 가지 비교적 균형 잡힌 권고 사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보고서는 또한 1991년부터 해밀턴의 정신 건강 문제 가능성에 대해 통보받았던 지방 당국의 대응 미비점도 드러냈습니다. 당시 그의 총기 면허를 취소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총기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거대한 여론의 압박 속에서 보수당 총리 존 메이저와 그의 후계자인 노동당 토니 블레어는 1997년 총기 권한을 급진적으로 강화하는 두 개의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총기 종류의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사격 애호가들은 매우 꼼꼼한 정신 건강 검진과 수많은 세부 절차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경찰은 주차 위반 딱지가 몇 장인지까지 확인합니다. 음주 후 운전한 적이 있는지도요. 절대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으면 총기 면허는 영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영국 사격 클럽의 한 회원이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규제 시행을 돕기 위해 정부는 무려 1억 5천만 파운드 규모의 프로그램까지 만들었습니다. 이 돈으로 16만 2천 건이 넘는 총기와 700톤의 탄약을 소유자들로부터 매입했습니다.
학교 총기 사건이 남긴 교훈
"순수하기에 하나님의 시선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린아이의 영혼입니다." 던블레인 대성당에 있는 희생자 추모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문구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26년 전 그들을 덮친 비극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왔습니다. 2018년에는 바실 오설리반 신부가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6주기를 맞아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이는 1996년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사건과 쌍둥이 같은 비극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희생자 대부분은 학교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방문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는 영화 "학교 총기 사건의 교훈: 던블레인에서 온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대학살 희생자인 교사 그웬 메이어와 그녀의 학생들, 1996년
당연한 이유로 총기 접근 제한에 관한 가장 뜨거운 논쟁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대량 살인이 일어날 때마다 논쟁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총기 접근을 쉽게 하자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쪽의 주장은 영국의 총기 사실상 전면 금지가 총기 범죄 감소로 이어진 것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던블레인 비극 이후 영국에서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200건이 넘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참고 자료:
- Solly, How the 1996 Dunblane Massacre Pushed the U.K. to Enact Stricter Gun Laws, Smithsonian Magazine (2022년 2월 20일 확인).
- Cohen, The life and death of Thomas Watt Hamilton, Independent (2022년 2월 20일 확인).
- What happened at Dunblane?, The Week (2022년 2월 20일 확인).
- 13 March 1996 Sixteen children killed in Dunblane massacre, stv News (2022년 2월 20일 확인).
- Dunblane massacre: Timeline of school shooting that shocked a nation, stv News (2022년 2월 2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