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학살 사건, 이름이 틀린 게 아니라 정확한 이유
1770년 3월 5일 저녁, 매사추세츠 식민지 보스턴의 킹 스트리트에서 무장한 영국군 병사들이 민간인들에게 발포해 다섯 명이 숨지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 '보스턴 학살(Boston Massacr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국 독립 혁명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배경과 경위
당시 보스턴은 세금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사건 당일, 한 소년이 영국군 장교를 모욕했다는 구실로 병사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분노한 주민 수십 명이 눈덩이와 돌, 곤봉을 던지며 관세청 앞에 주둔하던 영국군 초소로 몰려갔습니다.
혼란 속에서 병사들의 발포가 이어졌고, 크리스퍼 애틱스(Crispus Attucks)를 포함한 다섯 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최초의 희생자였던 애틱스는 아프리카계와 원주민 혈통의 선원으로, 오늘날 미국 독립운동의 첫 번째 순교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학살'이라는 단어는 과장인가?
흔히 제기되는 의문은 이렇습니다. 사망자가 다섯 명에 불과한데 '학살'이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과장 아닌가? 실제로 당시 사무엘 애덤스(Samuel Adams) 등 애국파 인사들은 반영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폴 리비어(Paul Revere)의 판화는 사건을 실제보다 더 극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일각에서는 '학살'이라는 명칭이 선전의 산물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이름이 정확한 이유
그러나 '학살(massacre)'이라는 단어의 핵심은 희생자의 숫자가 아니라, 무력을 쥔 군인이 민간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습니다.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겼든, 무장하지 않은 시민 다섯 명이 죽었다는 냉엄한 결과는 변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자국민에게 발포해 피를 흘리게 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를 '학살'이라 부르는 것은 감정적 과장이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담아낸 표현입니다.
또한 이 명칭은 하루의 비극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보스턴 주민들은 이후 매년 3월 5일을 기념일로 삼아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이러한 집단적 기억은 식민지 전체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보스턴 학살'이라는 이름은 사건의 참혹함과 그것이 역사에 남긴 무게까지 함께 담고 있는, 지극히 정확한 명칭인 셈입니다.
마무리
보스턴 학살 사건은 1770년 3월 5일 실제로 일어난 유혈 사태이며, 그 이름은 무장한 군인에 의한 민간인 살해라는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반영합니다. 이름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 이 명칭이 전하는 메시지—국가 폭력이 개개인의 생명에 미치는 무게—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