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네덜란드 네이커르크(Nijkerk) 자치구에서 10세기에 건조된 발부르크(walburg, 성토와 해자로 이루어진 중세 방어시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땅은 당시 하말란드 백작과 그의 딸들의 손바닥 위에서 오갔던 곳이었습니다.
2006년, 산책자의 우연한 발견
2006년, 한 하이커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네이커르크 자치구 아펠(Appel) 인근 풍경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언덕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언덕은 흙으로 덮여 있던 발부르크로, 성토(土壘)와 해자(垓字)로 구성된 중세의 방어시설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발부르크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는 현재 고고학적 국가기념물 지위가 부여되었습니다. 또한 이 고고학적 유적 단지는 네덜란드 기준으로도 상당히 큰 규모로, 무려 100미터 × 65미터에 달합니다.
성벽의 기능
유적 단지를 둘러싼 해자는 폭이 거의 5미터, 깊이는 2미터에 달했으며, 흙으로 쌓은 성벽은 밑바닥 기준 폭이 8미터가 넘었습니다. 성토와 해자 안쪽에서 고고학자들은 사람이 거주한 흔적과 우물, 목조 건물의 잔재를 발견했습니다. 이 요새는 아마도 대장장이와 청동 세공 장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토 내부에서 발견된 늪철광과 철 슬래그 잔재는, 그들이 인근의 철광이 풍부한 습지에서 채굴한 철광석을 직접 가공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이런 종류의 발부르크 안쪽 거주는 주로 귀족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귀족들은 흙을 쌓아 올린 성토, 필요하다면 그 위에 목책을 더한 형태의 방어시설을 지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보호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일란트(Zeeland)에서는 공격적인 바이킹을 막아내기 위해 다양한 원형 발부르크, 즉 링발부르크(ringwalburg)가 발견되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현지 영주가 소유한 농노들이 성토 뒤로 피신했습니다. 고위 귀족들은 여러 개의 방어 가능한 관저를 갖춘 광대한 영지를 소유했지만, 모든 곳에 동시에 머물 수는 없었기에 현지에서는 메이어(meier, 대리관리인)가 그들을 대신했습니다. 메이어들은 영주와 농노 또는 예속 농민 사이에서 농장의 운영, 토지의 경작, 그리고 영주를 위한 생산물 징수를 책임졌습니다.
역사 속 인물, 백작 비히만
네이커르크 자치구 아펠 인근에서 발견된 이 발부르크는 10세기에 하말란드 백작 비히만(Wichman)의 소유였습니다. 이 백작과 그의 가족에 대한 역사 기록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어, 발굴된 발부르크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매간 상속 분쟁
하말란드 백국은 오늘날의 펠러위에(Veluwe, 아펠 포함), 이설스트레이크(IJsselstreek), 악터후크(Achterhoek), 몬트페를란트(Montferland), 그리고 독일 국경 너머 일부 지역까지 포괄했습니다. 강력한 백작 비히만은 죽기 직전 자신의 백국 안에 있던 엘텐(Elten)에 여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창립 자본으로 그는 자신의 재산 일부, 그중 아펠도 수도원에 기증했습니다. 막내딸 리우트가르트(Liutgard)가 초대 수녀원장으로서 수도원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비히만에게는 큰딸 아델라(Adela)도 있었는데, 그녀는 수도원에 대한 기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아버지와 갈등을 빚게 됩니다.
973년경 비히만이 사망한 후, 리우트가르트 역시 자신의 상속분을 수도원에 기증했고, 아델라에게는 3분의 1의 몫만이 온전치 못한 형태로 남았습니다. 그녀는 자매와 겨루며 재산이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색슨 법을 근거로 들며 아델라는 엘텐에 기증된 영지와 관저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리우트가르트가 이에 반대하면서 두 자매는 법정에서뿐 아니라 검으로도 서로 맞섰습니다. 리우트가르트는 아델라의 관저 하나를 불태웠고, 아델라는 엘텐 수도원을 점거하는 강경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996년 리우트가르트가 사망하자 아델라가 승소했고, 특별 감정 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상속재산은 마침내 둘로 공정하게 나뉘었습니다. 엘텐 수도원은 아펠의 재산 일부를 계속 보유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수도원에 맞선 아델라의 투쟁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아델라 사후, 그녀의 딸 아젤라(Azela)는 수도원에 입회하면서 자신의 상속분을 수도원에 되돌려 주었고, 나머지 재산 역시 아펠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철광은 곧 권력
아펠의 성토 안쪽에 귀족 관저가 한때 서 있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하말란드 백작들의 소유였고, 이후 상속을 통해 엘텐 수도원의 것으로 넘어갔습니다. 이 지역은 소유주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철광 채굴은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귀족들은 발부르크 안에서 이루어지는 청동 가공에 대한 독점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경제적 거점은 이미 그 자체로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이를 보호하기 위해 높이 쌓아 올린 성토 역시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