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가톨릭 신부, 한스 슈미트의 충격적인 실체

성직자가 피고석에 앉게 되는 재판은 언제나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런 사건이 드물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는 사람의 추락이라는 점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바바리아 출신 신부 한스 B. 슈미트(Hans B. Schmidt)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는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고, 대서양 건너 독일에까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과연 어떤 죄를 지었길레 사형이라는 중형까지 선고받게 되었을까요?

문제아였던 젊은 사제

한스 슈미트는 1881년 바바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06년 마인츠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며 가톨릭 교회와 평생의 인연을 맺었지만, 독일에서의 사목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교구민들은 젊은 신부의 기이하고 부적절한 행동에 곧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들과의 정사 소문, 매춘부 이용, 심지어 어린 소년들에 대한 음란한 접촉까지 갖가지 소문이 돌았습니다. 결국 사제가 된 지 3년 만에 한스는 새 교구를 찾아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의 행선지로 정해진 곳은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성 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동료 사제와 갈등을 빚었고, 사건은 총격으로 번지며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1912년, 한스 슈미트는 뉴욕의 성 보니파시오 교회로 옮겨가게 됩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사랑'

새 교구에서 한스는 사제관 하녀로 일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이민자 안나 아움뮐러(Anna Aumüller)를 만났습니다. 훗날 그는 "하느님이 그녀를 사랑하라고 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안나에게는 그런 계시가 내려오지 않았고, 그녀는 오랫동안 집요한 구애를 거듭 밀어냈지만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가톨릭 신부, 한스 슈미트의 충격적인 실체

흥미롭게도 한스는 안나와의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다른 관계를 병행했습니다. 1912년 말부터는 뉴욕의 치과의사 어니스트 뮈레(Ernest Muret)와도 염문을 뿌렸는데, 그는 이 관계가 안나보다 자신의 욕구를 더 잘 채워준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안나와 결혼까지 올렸는데, 주례는 다름 아닌 자신이 직접 맡았습니다.

하녀와의 불륜 소문은 급세 퍼졌고, 결국 한스는 또 다른 발령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도시를 떠날 필요는 없었지만, 할렘의 성 요셉 교회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그는 안나를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안나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마침내 그 '계시'를 실행에 옮깁니다.

제물이 된 살인

1913년 9월 2일, 한스는 안나가 빌린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그날 밤은 안나에게 인생 최후의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그녀를 공격해 목을 베었고, 시신과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으며, 안나의 피까지 마셨습니다. 이후 그는 시신을 훼손해 조각낸 뒤 허드슨강에 던져 넣었고, 유해가 영원히 강바닥에 가라앉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교회로 돌아가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단 사흘 뒤 허드슨강변에서 베개 커버에 감싸인 여성의 몸통이 발견됩니다. 다행히 커버에는 태그가 붙어 있었고, 경찰은 이를 통해 침구 제조업체를 확인했으며, 제조사가 알려준 통신판매점까지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해당 침구 세트는 단 두 개만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수사관들은 한스 슈미트 명의로 임대된 안나 아움뮐러의 아파트 앞에 서게 됩니다.

아파트 안에서 경찰이 발견한 것은 갓 닦아낸 흔적이 남은 바닥, 벽에 묻은 혈흔, 그리고 주방 조리대 위에 놓인 핏자국이 선명한 칼이었습니다. 관리인은 경찰에 세입자의 행방을 알려주었고, 체포된 슈미트는 즉시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그는 안나를 '사랑해서' 죽였다며 살인의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밝혀진 것은, 이것이 그가 저지른 범죄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성직자의 숨겨진 범죄들

체포 이후 더욱 충격적인 진실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도시 안에 다른 아파트를 하나 더 빌려두고 의사 행세를 하며 낙태 수술을 집도하고 서류를 위조해 왔던 것입니다. 실제로 슈미트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 잠시 의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고, 그때 배운 지식을 불법 활동에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그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공백 사망진단서는 더 섬뜩한 계획을 암시했습니다. 한스는 일련의 살인을 저질러 보험 회사에서 보험금을 뜯어내려 할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가톨릭 신부, 한스 슈미트의 충격적인 실체

'살인 신부'의 체포 소식이 언론에 퍼지자 다른 끔찍한 폭로들도 쏟아졌습니다. 루이빌에 머물 당시 슈미트가 9세 소녀 알마 켈머(Alma Kelmer)를 살해해 교회 지하에 묻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바바리아 시절에도 소년 살해 사건이 그에게 지목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수사는 이미 종결된 상태여서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못했습니다.

법정에서 피고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근거로 정신 이상을 주장하며 방어했습니다. 그러나 증언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이 방어선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한스가 자신의 아내 행세를 부탁했던 여성 베르타 체흐(Bertha Zech)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녀의 증언으로 드러난 사실은, 한스가 안나 아움뮐러 명의로 5,000달러의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자신을 유일한 수익자로 지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 살인은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보험금을 노린 계획 범죄였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결국 그 성직자는 전기 의자에 의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형은 1916년 2월 18일 뉴욕 싱싱(Sing Sing) 교도소에서 집행되었습니다. 한스 슈미트는 오늘날까지 미국 사법 당국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유일한 신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