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라에는 저마다의 국가적 비극이 있다. 일본에게 히로시마가 그러하듯, 우리 브라질의 히로시마는 1950년 우루과이에 패한 것이었다." — 유명 브라질 언론인 넬송 로드리게스는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마라카나 비극이 일어난 지 70여 년이 흘렀다. 되풀이될 수 없는 재앙을 두고 쏟아져 나온 방대한 문학의 바다에 또 하나의 돌을 던지는 격이라, 무엇을 쓰더라도 부족해 보인다.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 키디 디물라는 축구와는 인연이 먼 사람이었지만, '패배'라는 주제에 깊이 매료되어 이런 구절을 남겼다. "패배를 포기하겠는가? 패배는 몸에서 몸으로 전승되는 전통이다. 포스트모던의 승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꿈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상상해 보라. 브라질인들은 오늘날까지도 마라카나 비극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도 섬뜩할 만큼 말이다. 그 특별함이 어찌나 심했는지, 이 사건만을 표현하는 고유한 단어까지 탄생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손을 비비며 환희에 젖어 이 단어를 발음한다. 바로 '마라카낭조(Maracanazo)'.
패배를 담은 수많은 책들
무승부면 충분했는데…
1940년대 말, 브라질 대표팀 '셀레상(Seleção)'은 국민들에게 최강의 팀이었다. 아데미르, 프리아차, 치쿠, 자이르로 이어진 공격진은 경기마다 평균 4골 이상을 터뜨리며 무적의 위용을 자랑했다. 브라질에서 열린 1950년 월드컵에서도 스페인을 7-1로, 스웨덴을 6-1로 대파했고, 이제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두면 될 처지였다. 성지 마라카나에 운집한 20만 명(공식 집계 관중 수는 축구 경기 역사상 최다 기록인 173,850명이지만, 실제로는 2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산된다)의 팬들이 첫 월드컵 우승을 미리 축하하고 있었다.
15년간의 독재 끝에 민주주의를 되찾은 지 얼마 안 된 나라에게 우승 트로피는 국격을 회복하고, 종교처럼 숭배하는 축구에 대한 긍지를 되찾을 최고의 기회였다. 브라질은 프리아차의 골로 선취점을 올렸지만, 이탈리아계 파라과이 출신의 후안 알베르토 시아피노가 동점골을 넣으며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재앙이 찾아왔다. 알시데스 기지아, 그가 우루과이의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며 마라카나를 통째로 침묵시켰다.
"모든 나라에는 저마다의 국가적 비극이 있다. 일본에겐 히로시마가 있듯이. 우리 브라질의 히로시마는 1950년 우루과이에 패한 것이다." 넬송 로드리게스는 이 말로 셀레상의 워털루를 증언했다. 종료 휘슬과 함께 수천 명의 브라질인이 관중석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수백만 명이 애도에 잠겼다.
관중석에서 추락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팬이 두 명, 그 밖에도 수십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해진다. 친구들이 '펠레'라고 부르던 소년은 눈물 흘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맹세했다. "울지 마세요. 제가 월드컵을 가져다줄게요." 그리고 그는 세 번의 우승을 선물했다! 이후 브라질은 통산 5회의 월드컵을 들어올렸지만, 리우에서 뜻밖에 놓친 그 트로피만큼은 잊지 못하고 여전히 아파하고 있다.
저주받은 골키퍼, 바르보자의 전설
브라질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자는 그날 이후 낙인찍힌 삶을 살았다. 그가 회상하기로, 마라카나 비극 20년 후 어느 가게에서 한 여성이 그를 알아보고는 아이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얘야, 저 사람이 브라질 전체를 울린 사람이란다."
심지어 1993년에는 바르보자가 브라질 대표팀 훈련장을 방문하려다가, 대표팀에 불운을 가져올까 우려한 나머지 출입을 금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브라질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받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세계 최고의 골키퍼는 조국의 배신자로 돌변했다. 바르보자는 브라질에서 트로피를 강탈해 간 우루과이의 결승골을 막지 못했으니까.
13년 뒤 마라카나 경기장이 보수 공사를 앞두자, 바르보자는 그 골 때문에 굴욕을 당했던 골대 기둥 세 개를 거두어 도끼로 산산조각 낸 뒤 재로 태워버렸다. 하지만 이런 엑소시즘조차 그를 저주에서 구원하지는 못했다.
바르보자는 리우 북부의 자택에서 친구들을 바비큐에 초대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도착한 뒤에야 이유를 알았다. 불길은 비정상적으로 컸고, 타오르는 유성 페인트가 지글거렸다. 바르보자는 평범한 장작이 아니라 마라카나의 골대를 태운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흉터를 남긴 그 기둥들을 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바르보자는 2000년 빈궁 속에서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장을 찾은 이는 많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형량의 최고형은 30년입니다. 하지만 나는 죄 없이 50년을 복역하고 있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휘슬을 듣기 직전 이렇게 선언했다.
잊지 말자. 브라질의 유니폼은 원래 흰색이었다. 하지만 1950년 월드컵 이후 흰색은 더럽혀진 색으로 여겨졌고, 유니폼 색은 완전히 새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승자들은 어떠했을까?
"우루과이에서 우리는 현재를 산다"
결승전 당일, 15세 브라질 소년 알디르는 영화관에 가기 위해 마우아 다리를 건너 우루과이로 들어갔다. 오후 상영이 문득 중단되고 조명이 켜지더니, 감격과 엄숙함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스페인어로 안내했다. "알려드립니다. 우루과이가 축구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국가를 불렀다!
마라카나에서 20만 명을 짓눌러버린 그 주인공 알시데스 기지아는 201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주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모든 일은 한순간에 일어나고,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법이죠."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 우루과이와 달리 — 결코 그를 잊지 않았다. 2000년 브라질은 그를 리우로 초청했다. 공항에서 여권을 검사대에 내밀자, 카운터의 여직원은 겨우 23~24살로 보였다. 그녀는 여권을 받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문제가 있습니까?" 기지아가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그 유명한 기지아 씨 맞으신가요?" — 1950년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녀가 너무 어려 보여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경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는 여기서 마치 단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낍니다!"
기지아는 한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때때로 나는 내가 브라질의 유령 같다고 느낍니다. 나는 언제나 그들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우리 우루과이 사람들은 현재를 삽니다. 끝난 일은 끝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또 다른 말도 남겼다. "축구 성지는 무덤처럼 고요했습니다. 단 세 사람만이, 단 한 번의 몸짓으로 마라카나를 침묵시켰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저였습니다!"
출처: 알렉스 벨로스 『Futebol』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The Days Are Told』, 『Mirr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