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948년 3월 7일, 도데카네스 제도 드디어 그리스에 정식 편입되다

도데카네스 제도는 실제로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부터 헬레니즘 세계의 운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국가에 정식으로 통합된 것은 놀랍게도 20세기 중반, 1947년과 1948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땅

지중해 동부의 요충지에 자리한 탓에 도데카네스 제도는 페르시아인, 사라센, 베네치아인, 제노바인, 십자군, 그리고 셀주크와 오스만 튀르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력의 파괴적인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1309년부터는 성 요한 기사단의 통치를 받았으며, 1522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할 때까지 그 지배 아래 머물렀습니다.

1821년 그리스 독립 전쟁이 시작되자 도데카네스 주민들도 봉기했지만, 1830년에는 에비아 섬이 자유 그리스 국가에 편입되는 조건으로 사모스 섬과 함께 다시 오스만 제국에 반환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통합의 희망과 좌절

1912년 이탈리아의 도데카네스 점령은 주민들에게 곧 섬들이 모국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실제로 1920년 8월 10일 체결된 세브르 조약에 따라 로도스 섬을 제외한 도데카네스 제도는 그리스에 할양될 예정이었고, 로도스만 한동안 이탈리아의 행정 하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소아시아 원정의 참패는 이탈리아에게 발뺌할 구실을 주었고, 무솔리니의 집권 이후 이탈리아는 오히려 섬들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도데카네스는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갔고,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한 후에는 영국의 관리 하에 놓였습니다.

파리 강화회담과 그리스의 외교

이는 그리스 외교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도데카네스 제도의 그리스 편입이라는 황금 같은 기회였습니다. 독일군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의 피가 많이 흘렀고, 이 문제는 그리스 국민 모두의 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파리에서 개최하는 강화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될 예정이었습니다.

1948년 3월 7일, 도데카네스 제도 드디어 그리스에 정식 편입되다

그리스는 차리다리스(Constantinos Tsaldaris) 총리를 통해 협상 테이블에 북에피루스와 도데카네스 제도의 획득, 그리스-불가리아 국경 확정을 국가적 요구 사항으로 올리고, 아울러 영국에 키프로스 문제도 제기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네 가지 국가적 요구 가운데 어려움과 복잡한 문제 없이 성공한 것은 오직 도데카네스 문제 하나뿐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과 처칠이 터키를 연합군 측에 참전시키거나 최소한 엄격한 중립을 유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에게해의 일부 섬들을 제안하며 터키를 꾀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스탈린은 도데카네스 문제를 소련이 위임통치를 요청했던 트리폴리(현 리비아) 문제와 연계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정책 전환 속에, 소련은 파리 강화회담 준비를 위한 외무장관 회의에서 도데카네스 제도의 그리스 할양에 동의했습니다. 1946년 6월 27일, 몰로토프(Vyacheslav Scriabin) 외무장관이 이를 선언했으며, 유일한 조건은 섬들의 비무장화였습니다. 강화회담이 개막되기도 전에 도데카네스 문제는 그리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열광적인 환영, 그리고 최종 서명

도데카네스 제도가 그리스에 할양된다는 소식은 내전의 진통을 겪고 있던 그리스에서 큰 열광으로 맞이해졌습니다. 강화회담은 1946년 7월 29일부터 10월 11일까지 파리에서 열렸으며, 그리스 측은 북에피루스 문제와 그리스-불가리아 국경 문제도 제기했지만, 미국이 소련과 그 위성국인 알바니아·불가리아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카스텔로리조와 시미 섬을 요구하려던 터키의 시도 역시 허사로 끝났습니다.

1947년 2월 10일, 파리에서 이탈리아와의 강화조약이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도데카네스 제도는 그리스에 귀속되었으며 이탈리아는 그리스에 1억 5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소련 측의 강력한 요구로 조약문에는 섬들이 비무장 상태로 유지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었는데, 이 조항은 1974년 이후 터키가 부당하게 인용하게 됩니다. 또한 1947년 그리스-이탈리아 조약문에 대한 터키의 해석과 1932년 이탈리아-터키 협정이 결합되면서, 1996년 임미아 위기 이후 앙카라가 제기하는 '회색 지역(grey zones)' 문제의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로의 귀환

영국 당국이 도데카네스 제도를 그리스에 인도하는 인도식은 1947년 3월 31일 축제 분위기 속에서 로도스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초대 도데카네스 군사사령관은 페리클리스 이오안니디스(Periklis Ioannidis) 제독이 맡았고, 훗날 그리스 공화국 대통령이 되는 학자이자 판사인 미하일 스타시노풀로스(Michael Stassinopoulos)가 정치 고문을 담당했습니다.

공식 편입식은 1948년 3월 7일에 거행되었으며, 1955년에는 도데카네스가 주(縣)로 승격되어 로도스가 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