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00억 달러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지만, 만사 무사의 부를 어떤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억만장자들을 압도하는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누구였을까요? 만사 무사(Mansa Musa)는 1280년 왕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보다 앞서 말리 제국은 무사의 형인 만사 아부 바크르(Mansa Abu-Bakr)가 다스렸으며, 그는 1312년 왕위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한 차례 원정을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대서양 횡단에 실패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시리아 출신 학자 시하브 알움마리(Shibab al-Umari)의 기록을 믿는다면, 아부 바크르는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일에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2,000척의 배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습니다. 과연 그들은 남미 해안에 닿았을까요? 우리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만사 무사는 형에게서 말리 왕국을 물려받게 됩니다.
화려하지만 이름 없던 군주
무사는 1312년부터 133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즉위 초기부터 그는 말리의 국경을 크게 확장하는 데 성공했는데, 무려 24개 도시를 정복했고 그중에는 부유한 도시 팀북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오늘날의 말리와 세네갈, 감비아 전역, 기니와 기니비사우의 대부분, 모리타니,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시에라리온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를 자랑했습니다.

만사 무사는 1312년부터 1337년까지 말리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말리의 국왕은 자국을 통과하는 금속과 사치품 운송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이처럼 방대한 영토는 금과 소금 같은 귀중한 자원을 무사에게 안겨주었고, 그는 이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말리 역사상 가장 부유한 통치자였던 무사는 당시 아프리카 전체 금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순금 무기를 들고, 30명의 노예가 나르는 옥좌에 앉아 신민과 손님을 맞이했으며, 청원인들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관리들을 통해 말을 전하게 했던 이 국왕이었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은 열망이 그를 움직였고, 드디어 1324년 메카로 향하는 여정에 오릅니다.
너무 많았던 '용돈'
목적지까지 약 5,0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기에, 무사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만 명에서 6만 명에 달하는 행렬과 함께 1만 2천 명의 노예를 데리고 갔습니다. 사하라 사막과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정에서 위대한 대상(隊商)을 따르던 사람들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국왕은 정비(正妃) 인나리 카누테(Inari Kanuté)를 동행시켰고, 그녀 역시 수백 명의 하인과 노예를 거느렸다"라고 데이비드 C. 콘래드(David C. Conrad)는 저서 『중세 서아프리카의 제국(Empires of Medieval West Africa)』에서 기술합니다. "상인들과 대상을 호위하는 병사들, 그리고 식량과 물 등 각종 물자를 가득 실은 수천 마리의 낙타와 당나귀들도 행렬에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수행단과 함께 메카로 향하는 만사 무사
그는 당시 맘루크 왕조의 수도였던 카이로에 3개월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터무니없는 금액을 탕진해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10년간의 경제 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술탄 본인에게 선물로 4만 닢의 금화를 건넸다고도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무사가 금을 너무 후하게 뿌린 나머지… 결국 금을 모두 써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산더미 같은 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두려움 없이 귀국 여비를 빚으로 마련했습니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말리로 돌아오며 무사가 자신의 황금이 초래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깨달았고, 유통 중인 고가의 금속 일부를 회수해 카이로 경제를 구하려는 의도로 돈을 빌렸다고 설명합니다.
추정에 따르면 무사 왕이 중동을 통과하며 남긴 경제적 손실은 오늘날 가치로 약 15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아프리카판 엘도라도
만사 무사의 사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통치자가 목표했던 '명성'을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세계는 말리와 그 엄청난 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사에 대한 소문은 기독교 유럽까지 전해졌습니다. 1375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카탈란 지도(Catalan Atlas)』에 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곳에서 국왕은 웅장한 옥좌에 앉아 손에 금화를 든 채로 묘사되었습니다.
만사 무사의 원정은 말리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팀북투는 크게 번영하여 아프리카와 중동의 시인, 학자,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국제적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판 엘도라도'라는 별명은 팀북투에 오랫동안 붙어 있었는데, 무려 19세기까지 그 명성이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가치로 무사의 순자산은 약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말리의 국왕은 신하들에 대한 보수에도 아낌없이 돈을 썼습니다. 메카에서 초빙한 건축가 아부 이삭 에스 사헬리(Abu Es Haq es Saheli)는 징구에레베르 모스크를 설계한 공로로 200킬로그램의 금, 즉 오늘날 가치로 수백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만사 무사는 교육, 예술, 건축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말리 곳곳에 학교와 도서관, 모스크를 세웠고, 세계 각지의 먼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유명한 산코레 대학(Sankore University)에서 공부했습니다.
무사는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말리 왕국은 그의 아들들에게 물려졌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제국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고, 이내 강대했던 말리 제국은 조각조각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 지역에 유럽인들이 등장하면서 남은 것들의 운명에도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부자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무사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 25인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이자 CelebrityNetWorth의 창립자인 브라이언 워너(Brian Warner)에 따르면, 무사의 재산은 오늘날 가치로 약 4,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참고 문헌
- Conrad, D., C., Empires of Medieval West Africa: Ghana, Mali, and Songhay, Chelsea House, 2010.
- Mohamud, N., Is Mansa Musa the richest man who ever lived?, www.bbc.com (열람일: 2022년 3월 24일).
- Niane, D., T., Recherches sur l'Empire du Mali au Moyen Age, Recherches Africaines, 1959.
- Silady, A., Four People Who Single-handedly Caused Economic Crises, smartasset.com (열람일: 2022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