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중국문학사 총정리: 두 개의 전통에서 현대 문학 혁명까지

서론: 중국문학의 두 가지 전통

중국 문학에는 크게 두 가지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지식인·관료 계층의 언어로 쓰인 문학적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구어체로 쓰인 민중(통속) 문학입니다.

민중 문학의 뿌리는 기원전 10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처음에는 시가 그 출발점이었고, 이후 연극과 장편소설로 확장되었으며, 점차 역사서와 통속 설화까지 흡수하며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당대 문단을 주도하던 관료 출신 지식인들은 이러한 대중 문학을 하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학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민중 문학은 지식인 계층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편 우아하고 세련된 문체가 특징인 정통 문학 전통은 약 2000년 전에 그 막을 올렸습니다.

고전기: 철학과 경전의 시대

중국문학의 고전기는 그리스·로마 문학의 시대와 비견됩니다. 문학의 골격이 형성된 시기는 주나라 말기, 즉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 사이였습니다. 공자·맹자·노자(老子)·장자(莊子) 등 위대한 사상가들의 저작이 바로 이 무렵에 나왔으며, 이 시대는 이른바 '오경(五經)', 즉 유교 경전의 편찬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시경(詩經)』 — 고전기 최고의 시가집

고전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가 작품은 단연 『시경』입니다. 이 시집은 대개 기원전 10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지어진 305편의 시를 모은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공자가 직접 선별하고 편집했다고 전해집니다. 수록된 시들은 농민의 일상과 궁정 생활을 노래한 소박하고 사실적인 작품들이 특징입니다.

초나라 시가와 부(賦)의 탄생

귀족적·궁정적 양식은 중남부의 봉건 국가였던 초(楚)나라의 시가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초나라는 중국 최초의 위대한 시인 굴원(屈原)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한나라 시대(기원전 206년~기원후 220년)에는 사실주의와 낭만주의의 흐름이 하나의 유파로 정립되었습니다. 초나라 가사에서 출발한 새로운 문학 장르가 바로 운문과 산문의 경계에 선 산문시 '부(賦)'입니다. 또한 기원전 2세기에 관청 악부(樂府)가 채록한 민요들은 시가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오경과 제자백가의 산문

최초의 산문 저작들은 『시경』과 함께 오경을 이룹니다.

  • 역경(易經): 변화의 원리를 상징으로 풀이한 점서
  • 서경(書經): 고대 국가 문서 모음집
  • 예기(禮記): 의례와 통치 규범의 집대성
  • 춘추(春秋): 기원전 722~481년 노나라의 연대기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는 중국 철학의 위대한 원전들이 잇따라 저술되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엮은 격언집 『논어』, 공자의 후학 맹자의 웅변적 논쟁을 담은 『맹자』, 도가(道家)의 창시자 노자에게 귀속되는 『도덕경』, 또 다른 도가 사상가 장자의 산문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밖에 묵자·순자·한비자의 저술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역사 분야에서는 사마천이 한나라 시대까지의 중국사를 정리한 방대한 『사기(史記)』를 남겼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구어와 구별되는 독자적 문어(文語)를 확립하면서 중국 산문 문학의 전통이 뿌리내렸습니다.

중세기: 분열 속의 번영

기원후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중국은 여러 경쟁 국가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되고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문학사상 가장 눈부신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정치적 혼란기의 시인들

정치적 격변기에 시인들은 자연 속에서 피난처와 위안을 찾았습니다. 일부는 은둔자가 되어 '전원(田園)·산수(山水)' 시파를 열었고, 또 다른 이들은 중국 민요 시가의 걸작을 남겼습니다. 시인 자야(子夜)에게 귀속되는 연애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격동의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은 자연의 즐거움과 고독한 삶을 노래한 도연명(陶淵明, 도잠)입니다.

당나라: 중국 시가의 황금기

중국 시가의 최고봉은 당나라(618~907)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2200여 명의 시인이 쓴 4만 9000편이 넘는 시가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가장 유명한 세 시인은 철학자이자 화가였던 왕유, 낭만파의 영수였던 도교 신봉자 이백, 그리고 정밀한 사실주의를 추구한 두보입니다. 두보의 작품은 시를 비판과 풍자의 도구로 활용한 백거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송나라: 사(詞)와 산문의 성숙

송나라(960~1279) 시대에는 소동파(소식)가 행수와 음률의 규칙에 따라 형식이 정해지는 '사(詞)' 장르의 최고 시인으로 꼽혔습니다. 여류 시인 이청조는 남편을 잃은 과부의 심정을 담은 사(詞)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편 당나라 산문의 종장 한유는 고전 문체로 되돌아가 직접적이고 간결하게 쓰자고 주장했습니다.

송나라에서는 문학 전통이 구양수로 이어졌는데, 그는 뛰어난 풍경 묘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소순(蘇洵)의 기발한 산문은 고전 문체의 백미로 평가받습니다.

연극의 등장

본격적인 연극은 중세 후반에 이르러서야 발달했습니다. 다만 당나라 때 벌써 배우들은 대중 예능인 가운데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고,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전문 극단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근현대: 소설의 시대와 문학 혁명

중국문학의 근대는 13세기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14세기에는 민중 서사문학이 비중 있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기 초기 장편소설 두 작품, 즉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수호전(水滸傳)』은 중국 민중의 산문 서사시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후 조설근이 사실주의 소설의 정수 『홍루몽(紅樓夢)』을 집필했습니다.

17세기에는 단편집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40편의 이야기를 엮은 『금고기관(今古奇觀)』입니다.

20세기에 들어 서구 문학의 영향 아래 중국 작가들은 후스의 주도로 '중국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학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일상의 구어체인 백화문을 문학의 언어로 채택하고자 했으며, 날카로운 수필과 소설로 전통 사회를 공격했습니다. 루쉰(본명 저우수런) 같은 작가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진전에도 기여했습니다.

문화대혁명기(1966~1976)에는 예술가와 작가들이 인민의 요구에 맞추어 창작해야 했고, 서구 부르주아적 영향은 강하게 비판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었고, 서구 사상과 형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용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