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혼노지의 변에서는 명장 아케치 미쓰히데의 동기와 배후 세력뿐만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이에 관해 다양한 설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반역의 당사자인 아케치 미쓰히데는 물론,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를 격파한 하시바 히데요시조차 노부나가의 시신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하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새벽 6시경 혼노지를 포위하는 기습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혼노지는 성곽 사찰로서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1만에서 3만에 이르는 대군을 상대로는 노부나가가 아무리 뛰어난 무장이라 해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입니다.
불타버린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는 가장 먼저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을 수색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 야마자키 전투에서 미쓰히데를 격파한 하시바 히데요시 역시 시신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찬가지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토에서 열린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식에서는 행방불명된 시신 대신 등신대 목조상을 만들어 유골함에 안치하는 대체 장례가 거행되었습니다.
전국시대의 전투에서 패배한 총대장의 시신을 확보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패배하면 목이 잘린다는 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노부나가의 목이 필요했을까?
미쓰히데는 노부나가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천하에 알릴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를 베었다!"라는 말만으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없다면 "노부나가는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천하 분할 전투에서 많은 다이묘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노부나가를 쳐부쳤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증거인 노부나가의 목이 없다면 "노부나가가 어딘가로 도망쳐 군세를 다시 일으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받게 되고, 누구도 미쓰히데 편에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역이용해 "노부나가 님은 살아 계시니, 함께 미쓰히데를 토벌하자!"라고 호소하며 세력을 규합했습니다.
전투 후 목을 베어 효수까지
이 시대에는 전투에서 승리한 쪽이 적장의 목이 본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수급 행위를 했습니다.
사진도 이메일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베어 죽인 적장이 진짜 본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직 가신이나 그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수급 확인을 통해 신원이 밝혀지면, 그 목을 효수하여 적장을 물리쳤음을 공공연히 선포했습니다.
목을 효수함으로써 다른 나라와 자국에 적장을 베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 효수된 목은 거의 항상 목과 몸통이 따로 묻혔는데, 목은 수총(首塚), 몸통은 비총(胴塚)이라 불리는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본인 역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수급을 실시한 인물입니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거두어 기요스 성으로 가져가 효수했으며, 1573년 아사이·아사쿠라 공격에서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아사이 나가마사의 두개골에 칠과 금분을 입혀 연회에서 내걸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적장의 목을 이렇게 내걸어 보이는 행위가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지니는지 노부나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테니, 죽음을 앞두고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사후 자신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부나가 자신도 자신의 시신이 미쓰히데의 손에 넘어가 효수당한다면,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에 명분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효수당한다는 것은 영예로운 전사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처형당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료 『노부나가 공기(信長公記)』에는 혼노지를 함락한 아케치 미쓰히데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을 구하라고 명했으나 보이지 않으니, 미쓰히데는 깊이 의심스럽고 두렵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목을 수색했지만 유골조차 찾지 못해 아케치 미쓰히데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아케치 미쓰히데가 오다 노부나가의 목을 찾았더라면 모반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결전에서 많은 동맹군을 끌어들여 승리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면 문제의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여기서 가능한 생각은 두 가지입니다. 누군가 노부나가의 시신을 혼노지에서 옮겨냈다는 설, 아니면 시신이 혼노지와 함께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는 설입니다.
이 수수께끼에 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이 혼노지에서 운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노부나가의 시신을 매장했다는 전승을 지닌 두 개의 사찰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교토의 정토종 아미다지(阿弥陀寺)입니다. 혼노지의 변 직후 노부나가의 오랜 친우였던 기요타마 조닌(清玉上人)이 노부나가의 시신을 옮겨 매장했다고 전해집니다. 경내에는 '오다 노부나가·노부타다의 묘'가 있으며, 노부나가 외에도 노부타다와 모리 란마루 등 혼노지의 변에서 숨진 사람들을 함께 위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요타마 조닌이 노부나가의 시신을 혼노지에서 옮겨낼 수 있었다면, 히데요시가 굳이 노부나가의 목조상을 태워 그 재를 유골에 대신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사찰에는 오다 씨 관련 인물들이 함께 묻혀 있으므로, 혼노지에서 숨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 위령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시즈오카현에 해당하는 스루가 국의 니치렌종 니시야마 혼몬지(西山本門寺)입니다. 혼노지의 변 전날 밤, 이 사찰의 개산 닛카이 닌(日海忍)은 가시오 도시켄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닛카이 닌이 훗날 혼인보 산사(本因坊算砂)라 불리는 바둑 명수였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닛카이 닌이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자결한 후 몰래 노부나가의 목을 빼내 혼몬지에 매장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설 역시 교토에서 스루가로 가려면 오와리를 지나야 하는데, 장남 노부타다가 자결한 상황에서 목을 다른 친척이나 오다 씨 가신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와리를 통과했다는 점은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패배한 무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사후 자신의 목이 어떻게 처리되느냐는 것이며, 노부나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노부나가는 아직 노부타다의 죽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목이 미쓰히데의 손에 넘어간다면 자식들의 안위도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노부나가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음 두 가지뿐이었을 것입니다.
시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완전히 태우거나
혼노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미쓰히데에게 발각되어 도중에 빼앗길 위험을 고려하면, 재조차 남지 않도록 태우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도 일본사 기술에서 "머리카락부터 뼈까지 모두 재가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혼노지에는 대량의 화약이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대화재가 일어나 시신을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시신의 유무가 이후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동기 외에도 패배한 오다 노부나가의 시신에 관해서는 많은 수수께끼가 남아 있습니다. 혼노지의 변은 파헤칠수록 새로운 설이 떠오르는 역사적 미스터리입니다.
시신 이야기를 하자면, 아케치 미쓰히데 본인이 토벌당했을 때도 시신의 신원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아 아케치 미쓰히데 = 난코보 덴카이(南光坊天海)라는 설이 존재합니다. 그만큼 당시 다이묘들에게 수급 확인이 중요한 의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