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약 7만 년의 기후 변화가 그린 조몬 시대의 흥망성쇠

약 7만 년 전, 따뜻했던 지구의 기후는 전 세계적으로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이렇게 시작된 뷔름 빙하기는 약 1만 년 전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빙하기의 끝자락, '한랭 회귀'의 시대

빙하는 오랜 기간 지속되지만, 약 2만 년 전부터 서서히 따뜻해지는 조짐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2만~1만 5천 년 전 무렵 '한랭 회귀' 현상으로 인해 매우 추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 주변의 평균 기온은 시베리아에 필적할 정도로 영하 7도까지 내려갔으며, 본격적인 온난화가 체감된 것은 1만 5천 년 이후였습니다.

얼음의 융해와 해수면 상승

빙하기에는 육지에 얼음이 많이 쌓입니다. 최근 자주 들려오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 역시 지표면의 얼음이 녹아 바다로 흘러들면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과거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넘어갈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소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고대 빙하기 동안 지상에 쌓였던 얼음이 녹아 바닷물로 흘러들고, 늘어난 바닷물이 그 무게 때문에 천천히 가라앉은 결과가 바로 현재의 해수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만 년 전 이전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 열도로 향한 다섯 갈래 이주 경로

해수면이 낮았던 덕분에 일본 열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대형 짐승(매머드, 나우만코끼리 등)을 쫓던 사람들은 이 땅을 건너 일본 열도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의 이주 경로는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뉩니다.

  • 북방 루트 : 시베리아 연안에서 홋카이도로
  • 한반도 루트 : 한반도에서 규슈로
  • 남방 해로 루트 : 오가사와라 제도 방면에서 혼슈로
  • 동중국 루트 : 중국 남부에서
  • 오키나와 루트 : 대만과 오키나와를 거쳐

조몬 문화의 탄생

온난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무렵, '조몬 시대'라고 불리는 문화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러한 기온 변화로 인해 구석기 시대에 사냥감이 되던 대형 짐승들이 점차 사라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동안 의존해 왔던 식량 획득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필요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솟아났습니다.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을 영위하는 등 구석기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문화, 즉 조몬 문화의 등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후 최적기와 조몬의 전성기

조몬 시대 초기에는 기후가 불안정하고 추웠지만 점차 안정되어, 약 7천~5천 년 전에는 '히프시서멀(기후 최적기)'이라 불리는 시대에 접어듭니다. 이 시기는 조몬 시대의 전성기와 겹치며, 당시 해수면은 현재보다 몇 미터에서 4미터 정도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간토 평야의 일부, 나고야 주변, 오사카 부 주변이 물에 잠겼습니다. 원래 바다 근처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조개껍데기가 버려진 패총이 내륙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바로 지형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냉각의 시작, 조몬의 쇠퇴

그러나 4천 년 전부터 서서히 냉각이 진행되면서 조몬 시대의 번영은 기울기 시작했고, 해안선은 현재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7천 년 전 인구는 약 26만 1천 명으로 추정되며, 동일본에 편중되어 분포했지만, 이 무렵부터 동쪽에서 서쪽으로의 인구 이동이 조금씩 시작됩니다. 이는 동일본의 인구가 수렵·채집 경제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헤클라 화산 폭발과 대륙의 격변

한편, 조몬 시대 후기 직전인 기원전 1159년, 아이슬란드의 헤클라 화산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후 본격적인 글로벌 냉각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진행되던 냉각이 더욱 가속화된 것입니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중국 대륙에서는 은(상)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새롭게 들어섭니다. 이 전쟁이 특히 컸지만, 은나라 정벌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피해 중원(황하 중·하류의 평원) 사람들이 중국 남부로 이동했고,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물론 그 목적지 중 일본 열도에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도래인의 등장과 야요이 시대로의 전환

일본 열도에 도착한 이들은 훗날 도래인이라 불리며, 벼농사, 금속기, 그리고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을 전파했습니다. 동시에 대륙 특유의 질병이 유입되었고, 냉각에 따른 식생 변화로 인해 인구는 약 8만 명으로 급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냉각으로 기존 방식으로는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자연스럽게 다른 방법의 식량 확보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때 선택한 방법이 도래인이 가져온 벼농사였고, 이것이 야요이 시대로 이행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