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마사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아내는 정말 악녀였을까? 니장군 뒤에 숨겨진 슬픈 삶](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23755.jpg)
호조 마사코(北条政子)는 '좋은 나라를 만들자'며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아내입니다.
남편 요리토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스스로 막부를 이끌며 '니장군(尼將軍)'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무섭도록 질투가 많은 아내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본 3대 악녀'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그리고 왜 '악녀'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호조 마사코, 간단 프로필!
마사코는 1157년, 이즈국(伊豆国, 현 시즈오카현)에서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도키마사는 다이라 씨와의 싸움에서 패해 이즈로 유배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사코는 20세 무렵,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시 대상이던 요리토모와 결혼합니다. 딸이 감시할 대상과 혼인까지 하게 된 것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였을 것입니다.
참고로 요리토모는 마사코와 결혼하기 전에 다른 여성 사이에서 아들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의 아버지는 다이라 씨의 노여움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기를 바다에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사람들이 다이라 씨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후 요리토모와 마사코 사이에서 장녀가 태어나자, 도키마사도 비로소 두 사람의 혼인을 인정했고, 호조 가문은 요리토모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마사코 42세 무렵, 요리토모가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마사코는 아들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자신은 출가하여 수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쉬게 해주지 않았습니다. 2대 쇼군과 3대 쇼군이 연달아 암살당한 것입니다. 결국 마사코는 '니장군'으로서 직접 막부를 이끌게 됩니다.
65세 무렵, 조정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가마쿠라 막부와 충돌합니다(조큐의 난). 막부 측 무사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이때 마사코는 가신들 앞에서 역사에 남을 연설을 합니다.
"너희가 요리토모 공께 받은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 적의 허튼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대장군의 뜻을 받들라. 아직도 조정 편에 서고 싶은 자가 있다면 지금 가도 좋다!"
이 말에 가신들의 동요는 가라앉았고, 무려 19만으로 불어난 막부군은 조정군을 대파했습니다.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4년 후, 마사코는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질투 많은 성격, '귀신 며느리'라 불리다!
![[호조 마사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아내는 정말 악녀였을까? 니장군 뒤에 숨겨진 슬픈 삶](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23720.jpg)
마사코가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요리토모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마사코는 그 여자가 숨어 있던 집을 통째로 부수고, 집주인마저 추방해버립니다. 마치 그림에서 나온 듯한 '귀신 며느리(鬼嫁)'의 모습이 처음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요리토모가 공주를 측실로 맞이하려 했을 때도, 상대의 아버지가 마사코의 분노를 두려워한 나머지 실행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미 마사코의 '귀신 며느리' 소문은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던 셈입니다.
그 후에도 마사코가 다시 아이를 가졌을 때 요리토모는 또다시 바람을 피웠습니다. 정작 요리토모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여자 사이에서 얻은 아이는 몰래 숨겨 기르다가 7세가 되어서야 호조 가문으로 보내졌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자손을 늘리기 위해 본처 외에 측실을 두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사코는 그것을 끝내 허용하지 않았고, 요리토모는 여자를 몰래 만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사코가 마사코였지만, 요리토모 역시 요리토모였던 셈입니다.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
장녀 · 오히메(大姫)
요리토모와 대립하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와의 화친 조건으로, 요시나카의 아들 요시타카(義高) 11세와 오히메 6세가 결혼합니다.
그러나 이윽고 요시나카가 요리토모와 다시 충돌하면서 패배했고, 그 여파로 12세의 요시타카마저 목숨을 잃습니다.
오히메는 그 슬픔 때문에 병을 얻었습니다. 마사코는 분노했고, 요리토모는 낙담했습니다. 마사코는 딸의 회복을 비는 절과 신사를 찾아다니며 재혼까지 알아봤지만, 오히메는 병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20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2년 뒤, 요리토모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녀 · 오토히메(乙姫)
요리토모가 사망한 바로 그해에 중병에 걸립니다. 교토에서 유명한 의사를 가마쿠라로 불렀지만 차도가 없었고, 14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합니다.
심지어 그 의사가 조정의 명을 받고 독을 먹였다는 설까지 존재합니다.
2대 쇼군 · 요리이에(頼家)
젊은 요리이에의 독재에 원로 가신들이 반대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여러 문제를 일으킨 데다, 그는 케마리(蹴鞠)에만 빠져 매일을 놀이로 보냈습니다.
결국 마사코는 그의 쇼군 자리를 박탈하고 이즈의 사찰로 보냈습니다. 그 후 요리이에는 23세에 암살당합니다.
3대 쇼군 · 산에토모(実朝)
산에토모는 형 요리이에와 달리 유능한 쇼군이었지만, 몸이 약해 병을 자주 앓았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8세에 형 요리이에의 아들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매번 남편과 아이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마사코는 저승길에 함께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정리하며
마사코가 '악녀'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쇼군 자리에 오른 아이들이 하나둘 요절하고 친정인 호조 씨가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엔 홀로 남겨진, 고통스럽고 외로운 삶이 있었습니다.
요리토모에 대한 그 격렬한 질투조차,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나약함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호조 마사코는 '악녀'라 불릴 이유가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