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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 성] 메이지 시대 폐성령과 전쟁의 위기를 뚫고 살아남은 이이 가문의 성!

[히코네 성] 메이지 시대 폐성령과 전쟁의 위기를 뚫고 살아남은 이이 가문의 성!

2017년 NHK 대하드라마 『여성성주 나오토라』는 몰락의 위기를 맞았던 이이(井伊) 가문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나오토라의 가문은 훗날 히코네 성(彦根城)의 성주가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히코네 성이 언제 지어졌는지, 그리고 수많은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소개합니다.


참고로 『나오토라』의 시대 배경인 전국 시대에는 아직 히코네 성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오토라의 양자 계획, 이이 가문의 부흥

전국 시대의 이이 가문

전국 시대의 이이 가문은 이마가와 씨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가독을 이은 남자들은 모두 전쟁과 가신들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이 나오토라'는 이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당주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오토라는 선대 당주 이이 나오치카(井伊直親)의 아들 나오마사(直政)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나오마사는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가신이 되어 '도쿠가와 사천왕'이라 불릴 만큼 성장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군. 이이 나오마사는 적장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거점이었던 사와야마 성(佐和山城)을 하사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이 가문이 사와야마 성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옛 영주였던 이시다 씨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판단해 새로운 성을 짓기로 계획합니다.

그러나 나오마사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낫지 못한 채 2년 뒤인 1602년, 히코네 성 축성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그 뒤를 장손 나오츠구(直継)가 직계로 이어받아, 1606년 히코네 성의 천수각이 완성되었고, 성하마을까지 포함한 전체 공사는 1622년에 끝났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폐성령?

1873년(메이지 6년), '폐성령'이 반포됩니다. 정식 명칭은 '전국 성곽 존폐 처분 및 병영 등 이전 건'으로, 퀴즈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디테일이죠.

성은 영주가 사는 저택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군사 요새입니다. 무기를 대량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따라서 메이지 정부는 누군가 성에 거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이러한 법령을 반포했습니다.

하지만 철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모든 성을 헐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육군이 정비되면서 일부 성은 철거되지 않고 남게 되었습니다.

히코네 성은 폐성령을 피할 수 있었나?

히코네 성 역시 폐성령의 대상이 되었지만, 메이지 11년(1878년) 메이지 천황의 순행 중 히코네를 지나면서 성을 보존하라는 명이 내려집니다.

동행했던 오쿠마 시게노부(大隈重信) — 제8·17대 총리이자 와세다 대학의 창립자 — 가 천황에게 히코네 성의 보존을 탄원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

제2차 세계대전 중 히코네는 미군에게 무려 7차례의 공습을 받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밤 대규모 폭격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날 정오 일본의 항복이 발표되면서 폭격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히코네 성은 파괴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7차례나 공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전략 요충지로서의 히코네

히코네는 동서를 잇는 교통의 결절점으로, 나카센도와 호쿠리쿠 방면 도로가 만나는 곳이며 세키가하라 전투를 비롯해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땅입니다.

전략 거점으로 주목받던 땅이었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이시다 미츠나리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이 나오마사라는 믿음직한 가신을 이곳에 두었습니다.

히코네라는 땅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히코네 성은 이런 성!

[히코네 성] 메이지 시대 폐성령과 전쟁의 위기를 뚫고 살아남은 이이 가문의 성!

히코네 성의 건물들은 오츠 성(大津城)의 천수각, 사와야마 성과 오다니 성(小谷城)의 망루(櫓) 등을 이축(移築, 옮겨 지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길상적인 의미도 담겼지만,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고 공사 기간을 단축하려는 목적도 컸습니다.

히코네 성의 천수각은 3층 건물로, 최상층에는 실용성이 없는 외회연(外回緣)이 돌려져 있습니다. 실용성보다는 화려하게 보이기 위한 장치일까요? 원래 오츠 성의 천수각은 5층 건물이었기 때문에 이축하면서 규모를 줄였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히코네 성에서는 벽면의 총안(銃眼)이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며, 계단의 경사는 무려 62도에 달합니다. 매우 가파른 각도 덕분에 위에서 적을 밀어내기가 쉬웠습니다.

계단은 사다리처럼 꽂혀 있어, 적이 올라오면 걷어차서 떨어뜨릴 수도 있었습니다.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성이라 할 만합니다.


국보로 지정된 천수각!

[히코네 성] 메이지 시대 폐성령과 전쟁의 위기를 뚫고 살아남은 이이 가문의 성!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히코네 성의 천수각과 망루는 국보로 지정되었고, 그 외에도 마사(馬屋) 등 여러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쇼와와 헤이세이 시대의 대수리를 거친 뒤, 2006년에는 '일본 100명성'에 선정되었습니다.


마무리

이번 시간에는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다했던 이이 가문의 거처, 히코네 성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전국 시대 이이 가문의 몰락 위기를 나오토라와 나오마사가 지켜냈고,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에서 히코네 성 축성에 이르기까지 이이 가문은 다이묘의 필두 가문으로 올라섰습니다.

폐성령의 위기와 전쟁의 화마를 넘긴 히코네 성은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