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 이야기] 천수각에 영주가 실제로 살았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90898.jpg)
일본 성곽의 상징인 ‘천수(天守)’. 흔히들 ‘천수각(天守閣)’이라고 부르죠.
최상층 발코니에서 영주가 성 아래 조카마치(城下町)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장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바로 그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막상 천수각에 올라가 보면 어떠신가요? 거대한 돌담과 좁은 계단, 텅 빈 방들 사이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영주가 정말 이런 곳에서 살았을까?”
“아니면 수백 년 세월이 지나며 무너져서 원래는 더 살 만한 곳이었던 걸까?”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놀랍게도 영주는 천수각에서 잠자리를 잡지 않았습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심어진 이미지가 너무 강력해서 의외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오늘은 일본 성곽의 상징 ‘천수’가 대체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지, 그 진짜 역할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수각은 전국시대부터 등장했다!
총포의 도입이 성의 모습을 바꾸다
1543년, 한 척의 배가 종자도(種子島) 해안에 표류해 닿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화승총이 일본에 전래된 순간입니다.
전국시대 중반까지 전투는 활과 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화승총의 등장으로 전술은 급격히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춰 성 역시 철벽 같은 요새 형태로 변모해 갔죠.
사실 그 이전의 ‘성’이라 불리던 것은 시설 주변에 울타리를 두른 수준의 아주 단순한 구조물이었습니다. 이름도 ‘○○키(城·柵)’, 즉 ‘울타리’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흙을 다져 쌓은 제방 형태의 벽인 도루이(土壘)와 망루 격인 야구라(櫓)가 만들어집니다. 이 시점까지 성은 주거가 아닌 순수한 방어 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총은 물론 대포까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화살과 창만 막으면 되던 기존 방어체계에 방탄 기능이 필수가 되었고, 그 결과 견고한 이시가키(石垣, 석벽)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수를 짓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행시키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아즈치 성
![[일본의 성 이야기] 천수각에 영주가 실제로 살았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90999.jpg)
1579년,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아즈치 성(安土城)을 완공합니다. 일본 최초로 5층 이상 규모의 천수를 갖춘 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4층 규모의 야구라나 소규모 천수 같은 건물은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천수에는 성주의 권위를 과시하는 요소가 압도적으로 강했습니다. “어떠한가! 나는 이렇게 화려한 천수를 가진 성을 지을 수 있다!”라는 위압감을 드러내는 것이었죠.
물론 성 안팎을 감시하고 적의 침입을 확인하는 군사적 기능도 있었지만, 너무 크고 눈에 띄면 오히려 표적이 됩니다. 실제로 1614년, 도요토미와 도쿠가와가 충돌한 ‘오사카 전투(大坂の陣)’ 당시 오사카 성의 천수는 대포의 포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즈치 성이 방어 시설로서는 다소 부족했지만, 반대로 주거 공간에 특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천수각에 사는 영주’의 모습은 바로 이 아즈치 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를 넘어서려 했던 오사카 성
![[일본의 성 이야기] 천수각에 영주가 실제로 살았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90906.jpg)
1582년,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최후를 맞이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당시에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급부상합니다.
그다음 해, 노부나가를 넘어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아즈치 성을 모델로 삼되 그보다 뛰어난 성, 바로 오사카 성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천수는 착공 후 불과 1년 반이 만에 완성되었는데, 자신의 권력을 가능한 한 빨리 천하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수를 지을 때는 오사카 시가지에서 선명하게 보이도록 배치했습니다. 그 화려한 천수에 매료된 각지의 다이묘들이 자신들의 성에도 천수를 짓기 시작하면서, 천수를 갖춘 성은 이 무렵부터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15년에 걸쳐 난공불락이라 불린 오사카 성이 마침내 완성됩니다.
하지만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천하는 도쿠가와의 것으로 넘어가고,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며 오사카 성은 함락됩니다.
현재의 오사카 성은 1620년 도쿠가와 막부가 재건한 것으로,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 성은 모두 땅속 깊이 묻혔다고 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하 7m 지점에서 석벽이 확인되었고, 이것이 도요토미 시대의 유구로 판명되었습니다. 도쿠가와는 10m에 달하는 매립 작업을 통해 도요토미 성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영주는 어디서 살았을까?
![[일본의 성 이야기] 천수각에 영주가 실제로 살았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90939.jpg)
전국시대 후반부터 천수를 갖춘 성이 잇달아 지어졌지만, 천수는 권력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주거지나 정무의 중심지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
천수의 외관은 화려하고 웅장했지만, 정작 내부는 소박하게 지어진 경우가 많았고, 일부 성에서는 무기고 등 창고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주들은 대체 어디서 살았을까요? 바로 성 안의 혼마루(本丸) 어전이라 불리는 평상(平層) 저택에서 생활했습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천수의 높이에 제한이 걸리고,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이 반포되면서 거처가 있는 성 외에는 폐성되어 성의 수가 급감합니다. 게다가 성을 수리할 때조차 막부의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천수가 손상되어도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천수 없는 성이 늘어났습니다.
대신 주거와 정무에 사용되던 혼마루 어전을 비롯해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 등의 어전이 더욱 호화롭게 꾸며지게 됩니다.
일본 성곽 하면 ‘천수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천수는 수십 년 동안만 유행한 일종의 붐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 붐의 방아쇠를 당긴 인물이 바로 노부나가였죠.
역사상 천수각에서 실제로 거주한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가 유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다른 곳에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결국 노부나가는 하는 일의 스케일부터가 남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마왕(魔王)’이라 불렸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