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1964년 브라질 군사 쿠데타: 굴라르트 축출과 군부 독재의 시작

1964년 군사 쿠데타는 3월 31일 밤, 주앙 굴라르트(João Goulart)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대한 이 무력 행위는 브라질 군부 독재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이 독재 체제는 1985년까지 약 2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쿠데타의 주요 명분 중 하나는 주앙 굴라르트 대통령이 초래할 수 있다고 여겨진 '공산주의 위협'이었습니다. 군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인, 대지주, 외국 자본 기업들이 연합하여 지원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역시 공산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쿠데타를 적극 지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성직자들 일부가 입장을 재검토하면서 교회는 군사 정권의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 중 하나로 변모하게 됩니다.

역사적 배경

1961년 자니우 쿠아드루스(Jânio Quadros)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임한 이후, 브라질의 보수 세력은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앙 굴라르트의 취임을 막았고, 대통령제가 약 2년간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로 대체된다는 조건에서만 그의 취임을 허용했습니다.

1963년에야 비로소 굴라르트는 대통령제 하에서 완전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으로 복귀했습니다. 1962년 미국 방문 등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굴라르트는 '공산주의 성향'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노동당(PTB) 출신으로 진보적인 발언을 해왔지만, 당시 기준으로 확고한 좌파 인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센트랄 두 브라질 집회

1964년 브라질 군사 쿠데타: 굴라르트 축출과 군부 독재의 시작

1964년 3월 13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굴라르트 대통령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센트랄 두 브라질(Central do Brasil) 역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15만 명의 군중 앞에서 곧 시행될 일련의 개혁 조치, 이른바 '기본 개혁(reformas de base)'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전직 주지사 레오넬 브리졸라(Leonel Brizola), 노동자총사령부(CG), 그리고 학생연합 회장 조제 세라(José Serra) 등 좌파 진영 인사들이 동행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법안은 고속도로와 철도변, 공공 저수지 주변 토지의 징수 조치였으며, 두 번째는 민간 정유소를 국가가 접수한다는 발표였습니다.

다음 날 굴라르트는 임대료 동결과 빈집 징수 조치까지 추가로 발표했습니다.

'신과 함께 가족의 자유를 위한 행진'

이러한 움직임은 군부와 우파 세력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따라 사회 일각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지원 아래 '신과 함께 가족의 자유를 위한 행진(Marcha da Família com Deus pela Liberdade)'과 같은 반정부 시위가 조직되었고, 이는 정부와 야권 간의 극명한 대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4년 3월 31일

정치적 양극화는 나날이 심해졌습니다. 노동자 대표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총파업을 조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3월 31일 새벽, 군부는 병영에서 전차를 끌어내 연방 정부 청사 여러 곳을 점거하며 쿠데타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주앙 굴라르트 대통령은 1964년 4월 1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이동하며 지지세력의 도움을 모색했지만, 동맹이었던 레오넬 브리졸라와 페르남부쿠 주지사 미겔 아라에스(Miguel Arraes)가 이미 체포된 사실을 알게 되자 군부와의 직접 충돌을 포기했습니다.

1964년 브라질 군사 쿠데타: 굴라르트 축출과 군부 독재의 시작

또한 쿠데타가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확인되면서, 굴라르트는 포르투알레그레로 피신한 뒤 그곳에서 우루과이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굴라르트가 아직 국외로 나가기도 전에, 당시 상원 의장 아우루 데 모라 안드라데(Auro de Moura Andrade)는 대통령직 공석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따라 하원 의장 라니에리 마지리(Ranieri Mazzilli)가 임시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군부가 장악했습니다. 군부는 4월 2일 공군, 해군, 육군 사령부로 구성된 소위 '혁명 최고 사령부(Comando Supremo da Revolução)'를 조직했습니다.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군부는 자신들의 행위를 '혁명'이라 규정했습니다. 과나바라 주지사 카를루스 라세르다(Carlos Lacerda)와 같은 우파 정치인들, 그리고 가톨릭 교회 일부의 지원을 받은 군부는 냉전으로 양분된 세계 질서 속에서 국가를 공산주의로부터 구원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좌파 진영은 이 사건을 민주적 자유를 탄압한 행위로 보아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주앙 굴라르트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었으며, 무력으로 축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엄연한 쿠데타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냉전
  • 사면법
  • 직선제 운동(Diretas Já)
  • 제5차 제도법(AI-5)
  • 브라질 군사 독재 관련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