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 이후 이어진 재건 시대(Reconstruction)가 한창이던 1870년대, '구원(Redemption)'이라는 용어는 백인 남부인들에게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북전쟁 패전 이후 연방정부와 공화당이 남부 각 주에 행사하던 영향력을 몰아내고, 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주 정권을 되찾으려는 정치적·사회적 운동을 '구원'이라 불렀습니다.
백인 남부인들에게 구원은 전쟁 이전의 생활 방식을 회복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며, 재건 시기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룩한 성과를 무너뜨리는 수단이었습니다.
백인 남부인에게 '구원'의 핵심 요소
1. 정치 권력 탈환
백인 남부인들은 재건 시대 동안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주 의회, 주지사직 등 주요 정치 직책을 다시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정치 조직을 결성했으며, 흑인 유권자를 위협하고 폭력으로 억누르는 방식까지 동원해 백인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하려 했습니다.
2. 경제적 통제
경제 분야에서도 백인 남부인들은 특히 농업 부문의 노동력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소작농 제도(sharecropping), 채무 예속(debt peonage), 인종 분리 정책 등을 도입하여 값싸고 순종적인 노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토지를 소유하거나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3. 사회적 통제
'구원'은 백인의 사회적 지배 질서를 재확립하고 인종 분리를 고수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했습니다. 백인 남부인들은 이른바 '흑인 법전(Black Codes)'과 짐 크로우(Jim Crow) 법령을 제정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교육, 투표, 공공장소 이용, 인종간 혼인 등 권리와 기회를 제한했습니다.
4. 연방정부 개입에 대한 저항
재건 시기 연방정부가 주 정부 내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에 대해 백인 남부인들은 큰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민권을 보호하기 위한 민권법 집행에 저항했습니다.
구원 운동이 남긴 역사적 결과
결국 '구원' 운동은 재건 시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이루어낸 사회적·정치적 성과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이었습니다. 그 결과 남부에는 인종 분리 사회가 뿌리내렸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이후 수십 년간 참정권을 박탈당하며 긴 억압의 시기를 겪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