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제4대 대통령 캄푸스 살레스: 재정 위기 극복과 과두정치의 시대

캄푸스 살레스(Campos Sales, 1841~1913)는 브라질 공화국의 제4대 대통령입니다. 상파울루 출신의 농장주이자 변호사로, 상파울루 주를 대표하는 커피 엘리트(과두 지배층)의 일원이었던 그는 1898년에 취임했습니다. 당시 공화국 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국가 재정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재정 위기와 펀딩 로운(Funding Loan) 협상

이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브라질을 급속한 인플레이션(galloping inflation)으로 몰아넣었고, 외채와 공공부채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여기에 국제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상황은 한층 심각해졌고, 국제 은행들은 브라질에 연체된 채무 상환을 요구하며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캄푸스 살레스는 아직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을 방문했을 때, 국제 은행가들과 '펀딩 로운(funding loan)'이라 불리는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협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브라질은 부채를 통합하기 위해 10년에 걸쳐 상환하는 1천만 파운드의 대규모 차관을 받게 된다.
  2. 브라질 외채의 상환 기한이 연장된다.
  3. 담보로 브라질 정부는 여러 항구의 관세 수입, 센트랄 두 브라질 철도,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수도 사업권을 제공한다.

무르티뉴의 긴축 정책

재무장관 조아킹 무르티뉴(Joaquim Murtinho)가 추진한 반인플레이션 정책은 유통 중이던 막대한 양의 화폐를 회수해 소각하고, 공공사업을 취소하며 공무원을 해임하는 등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세금이 신설되고 기존 세금도 인상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브라질 재정은 건전화되었지만, 산업과 상업에는 타격을 입혔고 가난한 계층과 도시 중산층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주지사 정책(Política dos Governadores)

캄푸스 살레스 정부는 각 주의 과두정치 세력(올리고르키), 특히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가 주도하는 거대한 정치적 합의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를 통해 이들 세력은 오랜 기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에는 전국 단위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은 분권화를 지향하여 각 주가 막대한 세금을 징수하고 해외에서 차관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캄푸스 살레스 집권기에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는데, 대통령 권력이 주 단위 과두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운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연방 입법부에는 각 주의 여당(집권 세력)을 대표하는 의원만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권력 검증 위원회는 각 주 과두세력의 지지를 받은 의원만 자격을 인정했습니다.

페르남부쿠에서는 호자 이 실바(Rosa e Silva) 가문이, 세아라에서는 아시올리(Acioly) 가문이, 아마조나스에서는 네리(Nery) 가문이, 마투그로소에서는 무르티뉴(Murtinho) 가문이 각각 지배했습니다. 야당 인사들은 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었고, 당선되더라도 의원직이 박탈되곤 했습니다. 의석 수는 인구 비례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처럼 인구가 많은 주일수록 국회에서 더 많은 대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주의 정치적 패권, 즉 관용적으로 불리는 '커피 우유 정책(Política do Café com Leil)'은 '주지사 정책'을 통해 완전한 형태로 정립되었습니다.

코로넬리즈모(Coronelismo)

코로넬(colonel, 대령)은 명망과 임명권을 바탕으로 한 권력을 지닌 지역 및 지방 정치 두목을 가리키며, 보통 대지주였습니다. 이들의 권력은 자신이 장악한 표의 수에 비례했으며, '고삐 투표(voto de cabresto, halter vote)'라고 불리는 통제된 표를 동원해 자신들이 내세운 후보의 당선을 보장했습니다. 코로넬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주 단위 과두세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코로넬리즈모(coronelismo)는 하나의 정치 통치 체제로 볼 수 있습니다. 지방 자치단체의 개발 사업 실행이 주지사(과두세력)에게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넬들의 영향력은 선거 과정의 부정 행위를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당시 투표는 비밀投票가 아니었고, 유권자들은 지역 유력자의 뜻에 따라 표를 행사했습니다.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지원 없이는 야세력이 설 자리는 극히 좁았습니다.

후계자 로드리게스 알베스

캄푸스 살레스는 1902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상파울루 주 전지사이자 제정 시절 고문을 지낸 로드리게스 알베스(Rodrigues Alves)가, 경쟁자 퀴니누 보카이우바(Quintino Bocaiuva)를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로드리게스 알베스는 캄푸스 살레스 본인의 지명을 받았으며,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공화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승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