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은 노예제 문제를 둘러싼 북부와 남부의 대립이 날로 심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연방 내 세력 균형과 각 주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여러 차례의 타협이 시도되었고, 이는 내전의 발발을 잠시 늦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 남북 관계의 갈등을 봉합했던 핵심적인 세 가지 타협을 살펴보겠습니다.
1. 1820년 미주리 타협(Missouri Compromise)
미주리를 노예주로, 메인을 자유주로 연방에 가입시켜 상원 안에서 노예주와 자유주 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북위 36도 30분을 경계선으로 정하고, 이 위도선 이북에 새로 편입되는 주는 자유주가 되며, 이남의 주는 노예제를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2. 1850년 타협(Compromise of 1850)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승인했으며, 뉴멕시코와 유타 줄주는 노예제 여부를 법으로 명시하지 않고 주민들의 의사에 맡기는 '인민주권' 방식으로 조직했습니다.
아울러 더욱 엄격한 도망노예법을 제정해 남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한편, 수도 워싱턴 D.C.에서의 노예 거래는 폐지했습니다.
3.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Kansas-Nebraska Act)
이 법은 미주리 타협을 공식적으로 철폐하고,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주민들이 인민주권 방식으로 노예제 존폐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북위 36도 30분 이북 지역에 캔자스와 네브래스카 두 개의 새로운 줄주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미주리 타협은 사실상 무효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해당 지역에서 친노예제 세력과 반노예제 세력 간의 충돌을 부채질했고, '피바다 흐른 캔자스(Bleeding Kansas)'라 불리는 유혈 사태로 번지며 남북 갈등을 더욱 격화시켰습니다.
타협의 한계와 남북전쟁
이처럼 여러 차례의 타협은 북부와 남부 간의 전면적인 충돌을 일시적으로 피하게 해주었지만, 두 지역 사이에 깊숙이 뿌리내린 가치관과 경제적 이해관계의 차이까지는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점점 커져가는 긴장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러한 갈등은 마침내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치닫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