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왕들에게 죽음을' 문신을 새긴 혁명가, 베르나도트는 어떻게 스웨덴의 왕이 되었나

젊은이의 반항심은 때로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이 당신의 미천한 출신을 기회로 바꿔준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 덕분에 프랑스 혁명기 급속히 부상한 확고한 혁명가였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은 그를 프랑스 원수로 임명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고 점차 인정에서 대결로 흘러갔습니다.

 왕들에게 죽음을  문신을 새긴 혁명가, 베르나도트는 어떻게 스웨덴의 왕이 되었나

샤를 14세 요한

한편 스웨덴에서는 왕세자의 요절로 샤를 13세 국왕이 후계자 없이 왕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베르나도트에게는 좋은 평판이 있었습니다. 뤼베크에서 포로로 잡힌 스웨덴 장교 30명을 훈륭하게 대해 '선량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소문이 스웨덴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1810년, 왕세자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스웨덴 왕이 파견한 오토 뫼르네르(Otto Mörner)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베르나도트에게 왕위 계승권을 제안하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에 나폴레옹은 비웃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일석이조'였습니다. 항명하는 군 장교는 해임되고, 스웨덴은 꼭두각시 왕과 동맹을 맺게 되는 셈입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의 입후보를 지지하기로 합니다.
뫼르네르가 스웨덴으로 돌아오자 불복종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베르나도트의 입후보는 순식간에 지지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직한 군인이며, 1809년 러시아에 넘어간 핀란드를 되찾아줄 지도자라고 믿었습니다. 1810년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왕세자로 선출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계산은 빗나갔습니다… 왕은 모든 권력을 그의 손에 맡겼고,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과 싸우기 위해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합류하여 1813년 노르웨이를 스웨덴 왕실에 편입시켰습니다.
1818년 샤를 13세가 서거하자 그는 샤를 14세 요한으로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혁명적인 청년 시절로 시선을 돌려보면, 베르나도트는 몸에 "Mort aux rois"(왕들에게 죽음을)라는 문신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단순히 왕이 된 데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왕위를 이어오는 베르나도트 왕조를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왕들의 죽음'을 외치던 혁명가가 하나의 왕조의 창시자가 된, 역사 깊은 아이러니이자 짜맞추기 같은 인생입니다.

출처: RTVE, La France en Suède, 나폴레옹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