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왕정 시대의 야심가,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업적

로마 왕정 시대의 야심가,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업적

이 블로그는 검색량이나 SEO를 의식하지 않고, 쓰고 싶은 때에 쓰고 싶은 내용을 쓰는 것이 유일한 규칙입니다. 그래서 로마 왕정 시대 요약 글처럼 조회수가 기대되지 않는 주제라도 과감히 다뤄보겠습니다.

로마 최초의 에트루리아계 왕

야마카와(山川) 교과서나 역사 용어집에서는 로마가 에트루리아로부터 독립했다는 서술만 강조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로마에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도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 주인공이 바로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Tarquinius Priscus)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타르퀴니우스가 순수한 에트루리아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리스인이었고 어머니는 에트루리아인이었죠.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남쪽의 그리스 세력 사이에 끼어 있던 로마에서, 두 민족의 혼혈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재미있는 아이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모두 폐쇄적인 사회였고, 외부 인재를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두 민족 몰락의 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로마는 어떤 의미에서 개미처럼 실용적인 성향을 지녔습니다. 출신이나 혈통을 크게 따지지 않았죠. 이 점에서 우리 일본인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님에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핼러윈과 발렌타인데이를 이벤트로 만들며, 새해 첫날까지 챙기는 유연함 말입니다. 이러한 융통성은 일본인과 로마인이 공유하는 미덕입니다.

로마 최초의 '선출된' 왕

타르퀴니우스는 전임 로마 왕들과 달리 상당히 야심찬 인물이었으며, 원래부터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 역사상 최초의 선거로 선출된 왕으로 전해집니다.

전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유언 집행관을 맡았던 타르퀴니우스는, 고향에서 정치적 지위를 얻지 못했던 반작용일지도 모르지만, 왕위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민중 앞에서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있음을 연설로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평민회(쿠리아 회)의 다수가 그를 다음 왕으로 지지했고, 원로원도 이에 동참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인과 사비니인이 번갈아 왕위를 계승하던 전통이 깨지고, 최초의 에트루리아계 왕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내정 전략과 대외 원정

로마 왕정 시대의 야심가,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업적

타르퀴니우스는 왕이라는 지위에 큰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었습니다. 즉위하자마자 원로원 의석을 두 배로 늘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당시 원로원 의원은 왕이 임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목적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는 왕, 평민회, 원로원이 분리된 정치 체제였는데, 타르퀴니우스는 평민회와 원로원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부적으로 안정된 그는 곧바로 대외 원정에 나섭니다.

역대 로마 왕들이 정복지의 주민들을 로마로 이주시켰다면, 타르퀴니우스는 정복지에서 부(富)를 로마로 옮기는 정책을 폈습니다. 약탈한 금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인기를 얻는 동시에, 로마의 대규모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특히 대규모 하수도 사업, 즉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의 착공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었으며, 로마 시의 기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로마 포룸(Roman Forum)의 정비도 그의 사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습지를 간척하고, 경기장 등 각종 시설을 로마 시내에 잇달아 건설하며 도로를 정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토목 공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에트루리아에서 초빙한 기술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진위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본으로 치면 신무천황 무렵의 시대라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로마가 농업 도시에서 대규모 상업 도시로 거듭나며 극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개선식의 기원을 만든 왕

타르퀴니우스는 최고신 유피테르에게 바치는 신전을 건립했으며, 승전 시 개선식(triumphus)을 거행하는 관행을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로마에서는 승전 때마다 개선식이 열렸고, 후대에는 개선문이 세워졌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나라에서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습니다. 현대 미국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의 기원 또한 타르퀴니우스의 개선식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에 대한 개인적 평가

야심찬 인물이었지만, 그 야망이 훌륭한 결실로 돌아온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훗날 로마의 기반을 다진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관습까지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실로 막대했습니다.

그의 시대에 로마는 도시로서 크게 발전하고 군사력도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가치 있는 도시로 변모한 만큼,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씨앗도 함께 만들어졌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