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르사유 조약: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부과되었으며, 여기에는 상당한 영토 손실, 배상 및 군사 능력 제한이 포함되었습니다.
2.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Kellogg-Briand Pact)이 독일과 다른 국가들에 의해 서명되어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포기했습니다.
3. 유화 정책:1930년대 몇몇 국가는 독일에 양보하여 전쟁을 피하기 위해 유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그 예로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를 합병할 수 있도록 허용한 1938년 뮌헨 협정이 있습니다.
4. 불개입 협정:1936년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가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한 비간섭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분쟁에서 민족주의 세력을 지원한 독일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되었습니다.
5. 국제 연맹: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연맹은 점증하는 독일의 침략과 영토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6. 베르사유 조약 이행 실패:독일의 재무장 및 베르사유 조약 위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맹국은 조약을 이행하거나 독일에 제재를 가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7. 집단 안보의 결여:국제 연맹에는 강력한 집행 메커니즘이 부족했고 많은 국가들이 독일에 대항하여 집단 행동을 취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8.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영국 총리였던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에 대한 양보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유화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뮌헨 협정으로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9. 소련-독일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로 인해 본질적으로 폴란드는 소련의 개입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독일의 침공에 취약해졌습니다.
외교, 유화, 불개입 등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공격적인 정책에 맞서 강력한 집단행동을 취하지 못하자 결국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