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찰스 1세, 의회와의 결별 이후 취한 운명적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영국 내전의 도화선은 1642년 1월 4일 찰스 1세가 국왕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 의원 다섯 명, 이른바 '다섯 의원(Five Members)'을 체포하려 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체포 시도의 좌절

그러나 이 계획은 대상 의원들이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자리를 비운 탓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체포 시도가 물거품이 되자 찰스는 더 이상 수도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런던을 떠나다

1월 10일, 찰스는 왕실 일행과 함께 런던을 떠나 햄프턴 코트(Hampton Court)로 향했습니다. 이때 그의 조카인 루퍼트 공이 지휘하는 약 300명 규모의 무장 병력이 호위를 담당했습니다.

거점 구축과 전쟁 선포

찰스는 왕당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먼저 요크(York)에 왕실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글로스터 공방전에서 실패한 뒤인 같은 해 10월 29일에는 옥스퍼드(Oxford)로 본거지를 옮겼습니다. 나아가 국왕은 의회를 '반역 세력'으로 규정하는 선전문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두 진영의 대치

이러한 움직임에 맞서 양측 모두 군대 소집에 나섰고, 결국 왕당파(Royalists)와 의회파(Parliamentarians) 사이의 장기적인 군사적 대치 국면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