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이슬람의 심장을 타격한 놀라운 기습, 853년 비잔틴의 다미에타 작전

이슬람의 심장을 타격한 놀라운 기습, 853년 비잔틴의 다미에타 작전

9세기 지중해, 아랍의 패권과 비잔틴의 반격

서기 9세기,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과 아랍 세력 간의 전쟁은 강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계속 이어졌다. 통설에 따르면 이 시기는 아랍 측이 전반적으로 우세를 점했던 때였다. 그렇기에 비잔틴이 적진 한복판, 이집트의 다미에타(Damietta)에서 감행한 대담한 작전은 더욱 놀라운 성공으로 기록된다.

무슬림 아랍 세력은 시칠리아 일부를 점령했고, 더 중요하게는 전략적 요충지인 거대 섬 크레타마저 차지하면서 지중해에서 지배권을 크게 넓혀 갔다.

크레타 고립을 위한 전략 전환

크레타의 아랍인들은 주로 이집트를 통해 압바스 왕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비잔틴에게 이 지역을 성공적으로 타격하는 일은 절실하고도 합리적인 과제였다. 비잔틴은 크레타 탈환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결국 제국은 전략을 바꿨다. 새로운 목표는 이집트와의 연락선을 끊고 북아프리카 연안에 있는 크레타 토후국의 보급기지들을 파괴해 크레타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저명한 비잔틴 학자 바실리예프(Vassiliev)에 따르면 다미에타는 곧 “크레타의 무기고”였다. 이 무기고는 반드시 파괴해야 할 최우선 표적이었다. 아랍 측 사료에 따르면 황제 미카엘 3세는 지중해의 세 아랍 거점을 향해 총 300척 규모의 세 개 함대 출격을 명령했다. 나머지 두 곳의 목표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중 하나는 다미에타였다.

853년 5월 22일, 번개 같은 기습

병사 5,000명을 실은 85척의 비잔틴 함대가 다미에타로 출항했다. 아랍인들이 '이븐 카투나(ibn Katuna)'라 부른 이 지휘관은 황제 미카엘의 측근이자 참모였던 귀족 다미아누스(Damianus)로 추정된다. 다미아누스 외에 다른 인물을 지목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다. 흥미롭게도 비잔틴 측 사료에는 이 작전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당시 이집트 해군은 쇠퇴 국면에 있었다. 연안 방비 또한 형편없었다. 크레타와 시칠리아에서의 승리 이후 무슬림 사회에는 잘못된 안일감이 만연했고, 대부분의 연안 요새는 방치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미에타만큼은 강력한 수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기 853년 5월 22일, 수비대는 라마단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도시를 비운다.

비잔틴군은 바로 이 틈을 노렸다. 정확한 첩보를 입수하고 있었던 듯, 바로 그날 다미아누스의 함대가 다미에타 항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은 번개처럼 상륙해 순식간에 도시를 장악했고, 도시는 사실상 무저항으로 함락되었다. 군인들은 즉시 창고로 돌진해 크레타로 보낼 예정이던 엄청난 양의 무기와 보급품을 발견했고, 이를 모두 차지했다. 일부 여성들과 다수의 콥트파 기독교인들 역시 배에 실려 함께 데려갔다.

폐허가 된 다미에타, 그리고 웃스툼 요새까지

주민 대부분은 이미 도시를 떠나 버린 뒤였다. 비잔틴군은 다미에타를 철저히 약탈한 뒤 불태웠다. 그들은 5월 23일까지 도시에 머물다가 잿더미만 남긴 채 바다로 떠났다. 이것으로도 모자란 듯 다미아누스의 함대는 동쪽으로 진격해 견고한 웃스툼(Ustun) 요새를 공격했고, 이곳마저 함락시켰다. 요새 안에는 역시 크레타로 보내질 예정이던 수많은 공성 무기가 있었고, 이들 역시 모두 불태워졌다.

이 원정은 무슬림 세계에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으며, 오늘날까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습 작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