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병(피크맨)은 '피크(pike)'라고 불리는 매우 긴 창으로 무장한 르네상스 시대의 보병이다. 수 미터에 달하는 창을 들고 조밀한 대형을 이루며 적의 기병 돌격을 막아내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중세 후기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 유럽 군대의 근간을 이루었다.
기원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피크로 무장한 이들은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 군대의 핵심 전력이었다. 14세기 초 스코틀랜드인과 플랑드르인 사이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스위스인들이었다.
장창병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창설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헬레니즘 시대 여러 왕들이 운용했던 팔랑크스를 이룬 마케도니아 호플리테스의 정신적 후계자였다. 이들의 주된 임무는 적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부활
장창병은 르네상스를 특징짓는 군사적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고전 고대와 스위스의 대형에서 영감을 받은 장군들은, 당시 군대의 중기병(장드아름, gendarme)을 대신하여 보병을 다시 군사력의 기반으로 끌어올렸다. 실제로 피크로 무장한 보병의 조밀한 대형은 당시 전투의 최대 무기 중 하나였던 중기병 돌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유럽 전역에서 새롭게 탄생하던 보병의 토대로 스위스 전술이 채택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15세기 말부터 일부 관찰자와 인문주의 개혁가들은 스위스 장창병 방진과 그리스 팔랑크스, 로마식 대형 같은 고대의 선례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둘째, 스위스인들은 특히 1476년 3월의 그랑송 전투와 1476년 6월의 모라 전투에서 부르고뉴군을 격파한 이후 전투 기술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새로운 전법의 살아있는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가난한 나라 출신인 수천 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외국에서 싸우며 생계를 꾸렸던 것이다.
1480년 봄,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는 프랑키 아르셰(franc-archer) 민병대를 대체하고 상시적으로 유지할 부대를 위해 피카르디 지역에 1만 명의 모험가와 2,500명의 공병을 소집했다. 에스케르드 영주 필리프 드 크레브쾨르가 지휘하는 이 '프랑스 부대(bandes françaises)'는 스위스 부대를 본떠 만든 신형 보병으로, 할버디어와 장창병으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스위스의 관행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국민군(국가 상비군)의 원형이 탄생했다. 프랑수아 1세는 1534년 7월 24일 칙령을 통해 보병을 지역 단위로 재편성했다. 부르고뉴, 샹파뉴, 기옌, 랑그도크, 노르망디, 피카르디, 도팽, 프로방스 등 8개 지역은 각각 6,000명의 신병을 제공하여 '군단(legion)'을 편성해야 했는데, 이 명칭은 로마 고대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
16세기에는 장창병 대형에 아르케부스 총병 부대가 추가되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의 테르시오(tercio)였다.
진화와 소멸
장창병은 18세기부터 전장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소켓 총검(socket bayonet)의 발명이었다. 이 덕분에 보병은 총을 쏘면서도 동시에 피크에 버금가는 무기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더 다재다능하고 배치하기도 간단한 머스킷 연대가 기존의 머스킷병과 장창병으로 이루어진 구형 대형을 대체하면서, 오랫동안 유럽 전장을 지배해 온 장창병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