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아세이 전투: 웰링턴 공작이 평생 최고의 승리로 꼽은 전투

아세이 전투: 웰링턴 공작이 평생 최고의 승리로 꼽은 전투

아세이 전투는 1803년 9월 23일, 오늘날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아우랑가바드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아세이 근교에서 벌어졌습니다. 아서 웰즐리(Arthur Wellesley) 장군은 영국군과 세포이(Sepoy, 인도 현지 용병)로 구성된 약 13,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병력보다 최소 세 배 이상 많은 40,000~50,000명에 달하는 인도 대군이었습니다. 이 부대에는 정예로 단련된 신디아 군대가 포함되어 있었고, 프랑스·독일·포르투갈·미국·영국 출신 장교들이 지휘를 맡고 있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새벽 무렵 웰즐리는 첩자로부터 적군이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야영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도군이 자신의 접근을 눈치채고 후퇴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웰즐리는 지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공격에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전투의 경과

신디아와 베라르(Berar)의 군대는 카이트나 강(Kaitna)과 주아 강(Juah)이 합류하는 지점 근처, 두 강 사이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들은 이러한 지형 덕분에 영국군이 카이트나 강을 건너 공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웰즐리는 근방에서 도하 가능한 여울을 발견하고, 아세이 마을 인근에서 강을 건너 적의 좌익 방면으로 기동했습니다. 이 작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영국 기병대의 반격에 힘입어야만 마라타 기병대를 몰아낼 수 있었고, 신디아 보병은 새로운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신속히 재배치했으며, 독일 용병 폴먼(Pohlman) 역시 포병을 이끌고 대응했습니다.

치열한 저항과 막대한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웰즐리는 부대를 끝까지 전진시켜 인도군의 포병 진지를 탈취하고 신디아 부대를 밀어붙였습니다. 아세이 마을 자체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방어 거점이었지만, 곧 신디아 기병대가 후퇴하면서 영국군은 다시 보병으로 시선을 돌려 여러 개의 종대를 차례로 격파했습니다. 이윽고 웰즐리는 마지막 총공격을 감행했고, 주아 강에 등을 대고 있던 인도군은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는 극도로 참혹했습니다. 인도 제후들이 후퇴할 때 그들의 진영에는 약 6,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영국군 역시 승리를 거두었지만 1,60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의의

훗날 초대 웰링턴 공작(Duke of Wellington)이 된 아서 웰즐리는, 생애에 참전한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중요한 군사 작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세이 전투'라고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명장조차 이 전투를 자신의 인생 최고의 승리로 기억했다는 사실은, 소수 정예로 압도적인 대군을 상대한 이 전투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양측의 전력

영국군

지휘관: 아서 웰즐리
병력: 13,500명
화포: 20문

손실
전사: 428명
부상: 1,156명
실종: 18명

인도군

지휘관: 다울랏 라오 신디아(Daulat Rao Sindhia)
병력: 40,000~50,000명
화포: 100문

손실
사상자: 약 6,000명
화포 상실: 98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