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드레 지른헬드(André Zirnheld, 1913년 3월 7일 ~ 1942년 7월 27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특수공수부대(SAS)에 소속되어 활약한 프랑스 공수부대원이다. 그는 전사한 프랑스 공수부대 최초의 장교이자, 프랑스 공수부대의 정신적 상징이 된 '낙하산 부대의 기도(La prière du para)'의 작가로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철학 교사에서 군인으로
앙드레 지른헬드는 1913년 3월 7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철학 학위를 취득한 뒤 1937년 튀니지 카르노 고등학교(Lycée Carnot)의 철학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8년 10월에는 레반트 지역 프랑스 세속 선교회(Mission Laïque Française) 산하 학교의 교수로 발령받았다.
전쟁의 발발과 자유 프랑스 합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른헬드는 레바논의 대공포병 부대에 배속되었다. 본토 프랑스에서 싸우고자 자원했지만, 1940년 6월 22일 휴전 협정이 먼저 체결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그는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거쳐 자유 프랑스(Free France) 진영에 합류했다. 비시 정권의 군법회의는 그를 탈영죄로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재산 전체를 몰수했다.
지른헬드는 해병 보병 제1대대에 일병으로 배속되어, 1940년 9월 6일 자유 프랑스군(FFL) 부대가 치른 첫 전투인 시디 바라니(Sidi Barrani) 전투에 참가했다. 1941년 1월에는 학력과 경력을 인정받아 최전선에서 물러나 카이로 정보·선전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업무에 큰 열의를 가졌던 그였지만, 곧바로 전선 복무를 다시 요청했고, 1941년 6월 브라자빌의 사관후보생 학교(École des Aspirants) 과정에 입교하여 같은 해 말 5등의 성적으로 수료했다.
SAS 입대와 첫 임무
1942년 2월 중동으로 돌아온 지른헬드는 특수공수부대(SAS) 내 프랑스 중대로 편성된 제1낙하산 중대에 자원입대했다.
그의 첫 임무는 1942년 6월 12일 벵가지 근교의 베르카 3호 공항(Berka-3) 습격이었다. 4인 팀을 지휘한 그는 지상의 적기 6대를 파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모든 SAS 대원들이 그렇듯 첫 임무를 완수한 그에게는 SAS 작전 날개 휘장, 소위 '이집션 윙스(Egyptian Wings)'가 수여되었다. 이후 그는 철도 노선 파괴 작전, 차량 습격 및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포로 확보 임무 등을 차례로 수행했으며, 전공을 인정받아 무공십자장(Croix de Guerre)과 영국 군사 십자장(Military Cross) 후보로 추천되었다.
마지막 임무
지른헬드의 네 번째 임무는 시디 하니시(Sidi Haneish) 대형 공항 습격이었다. 1942년 7월 26일 밤부터 27일 새벽까지, 영국과 프랑스 SAS가 이끄는 무장 지프 18대가 출격했다. 역V(역삼각) 대형을 이룬 지프들은 단 몇 분 만에 활주로를 따라 주기된 적기를 기관포로 쓸어버렸다. 이 기습으로 폭격기와 수송기 37대가 파괴되었고, 공항에서 영국 SAS 대원 2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귀환 도중 지른헬드의 지프에 펑크가 났다. 프랑수아 마르탱(François Martin) 준사관이 탄 또 다른 지프가 그들을 도우러 남았고, 나머지 대열은 먼저 떠나갔다. 두 지프는 수리 후 다시 길을 나섰지만 한 번 더 펑크가 나고 말았다. 해가 뜨자 지프들은 멈춰 서서 은폐를 시도했다. 약 3시간 후, 독일 융커스 Ju 87 '슈투카(Stuka)' 폭격기 4기 편대가 이들을 발견하고 기관총을 퍼부었다. 두 번째 저공 통과 때 지른헬드는 어깨에 이어 복부에 피탄되었고, 오후 1시경 숨을 거두었다.
숨지기 직전 그는 마르탱에게 "나는 너를 먼저 떠난다. 나 안은 모든 것이 평안하다."라고 말했으며, 짐 속의 서류와 책들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르탱이 그의 장비 속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낙하산 부대의 기도'를 적어 놓은 지른헬드의 노트였다.
영예와 평가
지른헬드는 해방 훈장 서훈 명단에 "침착하고 담대한 훌륭한 지휘관"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는 SAS의 좌우명 "감히 행하는 자가 이긴다(Who Dares Wins)"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태도였다. 그는 1943년 5월 1일 사후에 해방 동료 훈장(Companion of the Liberation)을 추서받았다.
낙하산 부대의 기도
'낙하산 부대의 기도'는 프랑스 공수부대에 널리 알려진 문장으로, 프랑스 공수부대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많은 군인들이 이 '기도문'이 자신의 직업군인으로서의 소명을 일깨워 주거나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반면 그 작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 잡지 〈테르(Terre)〉가 지른헬드를 조명한 기사에서조차 그를 "잊혀진 영웅"이라 불렀을 정도다.
발췌:
"나는 전쟁을 원망하지 않는다. 전쟁으로부터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는 전쟁으로부터, 전쟁이 없었더라면 살았을 인생보다 더 큰 결실을 얻어야 한다. 오히려 평화야말로, 그 신분과 경력은 내 성장에 인위적이고 위험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의 문제는 전부, 이와 같은 박자를 다시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