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세기 공룡 '뼈 전쟁': 코프와 마시의 치열한 라이벌리

19세기 공룡  뼈 전쟁 : 코프와 마시의 치열한 라이벌리

19세기 말, 미국 서부는 거대한 공룡 화석 매장지가 연이어 발견되며 고생물학계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고 박물관들은 더 많은 표본을 확보하려 경쟁했습니다. 이 독특한 상황에서 두 명의 고생물학자, 한때 절친했던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Edward Drinker Cope)와 오스니엘 찰스 마시(Othniel Charles Marsh)는 다이너마이트, 삽, 곡괭이, 망치, 정을 동원해 켈로피시스(Coelophysis), 알로사우루스(Allosaurus), 디플로도쿠스(Diplodocus), 스테고사우루스(Stegosaurus),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 등 수많은 공룡을 발굴하며 서로를 감시하고, 상대의 발견을 방해하고, 인부를 매수하고, 물자를 가로채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한 손엔 붓을, 다른 손엔 소총을 든 채 인디언 보호구역까지 진출하며 역사가 '뼈 전쟁(Bone War)'이라 부르는 전대미문의 과학 전쟁을 치렀습니다.

우정의 종말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퀘이커교 집안 출신인 코프는 자연과학을 공부해 1864년 자연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하버포드 대학 동물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남북전쟁의 참화를 피하게 하려 유럽으로 보낸 3년 동안, 베를린에서 예일대 출신의 마시를 만났습니다. 마시는 조지 피바디(George Peabody)라는 거물 은행가이자 산업가의 조카로, 삼촌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박물관을 짓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발굴 자금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코프는 열정적이고 즉흥적이었으나 퀘이커교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해 마시가 몸담은 상업 세계를 경멸했습니다. 반면 마시는 치밀하고 신중한 성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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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는 진화론에 동의했으나 그 메커니즘엔 이견이 있었습니다. 코프는 신라마르크설(생물이 평생 환경에 적응하며 획득한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준다는 설)을 지지했고, 마시는 다윈의 자연선택설(무작위 돌연변이가 자연선택된다는 설)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뉴저지 발굴에서 협력하며 서로 배웠고, 코프가 새 파충류 화석을 발견해 콜로스테우스 마시이(Colosteus marshii)라 명명하며 우정을 과시하자, 마시도 모사사우루스 코페아누스(Mosasaurus copeanus)로 화답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치열한 경쟁이 사소한 갈등을 키워 결국 결별과 개인적 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발굴 중 마시는 코프가 '진정한 고생물학자'가 아니라며 코프의 인부들을 매수해 화석을 가로챘습니다. 긴장은 냉전으로 번졌고 신문 지면을 통해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결정적 파국은 1870년, 코프가 해양 파충류 엘라스모사우루스(Elasmosaurus)를 발견해 공개했을 때였습니다. 초청받은 마시는 대중 앞에서 코프가 두개골을 꼬리 끝에 붙이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음을 폭로하며 옛 친구를 공개적으로 망신시켰습니다.

"뼈 전쟁"의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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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과학계는 최초 공룡 발견에 열광했고, 박물관들은 신종 표본 확보에 혈안이었습니다. 영광은 미국 서부의 풍부한 화석층, 때로는 인디언 보호구역까지 파헤치는 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원정대 고용, 장비, 수송엔 막대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코프는 미국 지질조사국의 지원을 받아 와이오밍 블랙 뷰츠(Black Buttes) 근처에서 첫 뿔공룡 아가타우마스 실베스트리스(Agathaumas sylvestris)를 발견했습니다. 행운이 따르는 듯했으나, 포트 브리저(Fort Bridger)에서 기다리던 인부와 물자가 사라졌습니다. 배후엔 마시는 있었습니다. 코프의 협력자들을 포섭해 발굴 기반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마시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이어가며 코프의 논문을 면밀히 검토해 분류 오류를 놓치지 않고 지적했습니다.

1877년 모리슨(Morrison) 근처에서 두 교사가 동시에 거대한 공룡 화석층을 발견했습니다. 원주민이 대형 용각류 뼈로 오두막을 지었다는 전설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교사 아서 레이크스(Arthur Lakes)는 마시에게, 두 번째 루카스(Lucas)는 코프에게 알렸습니다. 고생물학계의 두 거물이 같은 지점으로 몰려들어, 더 많은 화석을 찾고 더 많은 신종을 명명하려는 무자비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발굴 성과 면에선 마시가 단연 앞섰습니다. 다이너마이트로 스테고사우루스 등을 발굴하고 티타노사우루스(Titanosaurus)라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코프가 그 이름이 이미 선점됐음을 지적해 마시는 아틀란토사우루스(Atlantosaurus)로 바꿔야 했습니다. 복수는 차갑게 식혀야 제맛이었습니다. 현장에선 마시의 행운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탐사대가 와이오밍에서 거대한 공룡 공동묘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마시는 오리건으로 간다 소문을 내고 몰래 와이오밍으로 향했습니다. 19세기 공룡  뼈 전쟁 : 코프와 마시의 치열한 라이벌리 하지만 코프는 속지 않았고, 상인으로 위장한 첩자들을 보내 발굴 현장을 염탐하게 했습니다.

첩자들은 발각돼 코모 블러프(Como Bluff)에서 쫓겨났습니다. 폭풍과 도마뱀 떼의 습격 속에서도 마시 팀은 디플로도쿠스,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 등 대형 쥐라기 용각류를 연이어 발굴했습니다. 코프는 질투심에 불타 마시가 발견한 화석들을 파괴하려 인부를 보냈습니다. 반과학적 행태를 탄식할 수밖에 없지만, 마시 역시 가져갈 수 없거나 가져가기 싫은 화석들을 코프가 수집할까 봐 직접 부수곤 했습니다.

사기가 꺾인 코프의 일부 인부들이 마시 진영으로 넘어갔습니다. 마시는 발굴을 이어가 트리케라톱스(처음엔 들소로 오인)을 발견했고, 다코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진출했습니다. 레드 클라우드(Red Cloud) 추장과 화석 발견 시 보상금을 지급하고 워싱턴에서 추장의 대변인 역할을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마시는 '이중 혀'를 놀려 축제 기간 몰래 수레 여러 대 분량의 화석을 빼돌렸습니다.

전투원의 소멸로 끝난 전쟁… 하지만…

두 사람의 긴 결투는 1897년 코프가 57세로 돌연사하며 끝났고, 마시도 2년 뒤 따라갔습니다. 죽기 전 마지막 도발로, 코프는 유언으로 자신의 뇌를 적출해 무게를 재달라 요청했습니다. 당시 뇌 크기가 지능에 비례한다는 설(현재는 거짓으로 판명)이 있었는데, 마시도 똑같이 하게 유도해 사후에라도 누가 우월한지 과학적으로 가려보려 한 것입니다.

19세기 공룡  뼈 전쟁 : 코프와 마시의 치열한 라이벌리

방식이야 어떻든, 마시가 점수상으로 이겼다 해도 이 기묘한 전쟁에 진정한 승자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궁극적 승자는 과학입니다. 이 배신적인 경쟁으로 인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두 고생물학자는 중생대 공룡과 파충류 140여 종을 새로 발굴해냈습니다. 그들의 기록과 화석 수집품은 후대 고생물학자들에게 토대가 되었고, 그들의 모험은 여러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이 멸종 생물에 매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열기는 오늘날까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코프의 수장품은 현재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마시의 수장품은 예일대 피바디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

- Schneider François-Pierre, "The 'War of Bones' between Marshall and Cope", Préhistoire Magazine, N°3, 2011년 11월.

- Cody Kimmel Elizabeth, Dinosaur Bone War: Cope and Marsh's Fossil Feud, Landmark Books.

고생물학 입문 추천 도서

- 저자의 고생물학 컬렉션

- Eric Buffetaut, Le Loeuf Jean, Le Roux Guy, 사라진 세계들: 대륙 이동 아틀라스, Berg International, 1998.

- Jay Gould Stephen (편), 생명의 책, Seuil, 1993.

- Lecointre Guillaume, 진화 비판 가이드, Belin, 2009.

- Pinna Giovanni, 화석, Editions Atlas, 2005.

- Steyer Sebastien, 공룡 이전의 지구, Belin pour la Scienc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