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먼드 에임스 스프루언스(Raymond Ames Spruance, 1886년 7월 3일 ~ 1969년 12월 13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의 제독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승리를 이끈 설계자로 평가받으며, 태평양 전역의 주요 공세 작전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인물이다.
청년 시절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스프루언스는 1907년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전기공학 학위도 함께 취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구축함 함장으로 복무하면서 1926년부터 1927년까지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에서 전략을 연구했다.
1938년에는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USS Indianapolis)의 함장에 임명되었고, 2년 뒤에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 위치한 제10해군구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940년 12월에는 소장으로 진급하며 본격적인 장성급 지휘관의 길에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미드웨이 해전과 운명적 계기
전쟁 초기, 스프루언스는 제16기동부대(Task Force 16)를 지휘하던 윌리엄 홀시(William Halsey) 제독 휘하에서 순양함 전대를 맡았다. 그러나 홀시가 갑작스러운 피부 질환으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할 수 없게 되자, 그의 강력한 추천에 따라 스프루언스가 제16기동부대의 지휘권을 물려받게 된다.
항공모함 3척을 보유한 제16기동부대를 이끌고 출전한 스프루언스는 이 전투에서 전황을, 나아가 전쟁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판단들을 내렸다. 그의 침착하고 과감한 지휘 아래 미군은 일본 항공모함 기동부대에 치명타를 가했고, 이 승리는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다.
1942년 6월 홀시가 복귀하자, 스프루언스는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 제독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제독으로 진급해 니미츠의 부지휘관이 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태평양 전역 공세 작전의 계획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중부태평양 공세 지휘
1943년 9월, 스프루언스는 중부태평양군(Central Pacific Force)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이 부대는 1944년 4월 제5함대(Fifth Fleet)로 재편되었다. 이 시기 그는 주로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를 기함으로 삼아 작전을 지휘했다.
그는 이 직책에서 길버트 제도, 마셜 제도, 마리아나 제도, 이오지마, 오키나와를 차례로 점령해 나가는 일련의 공세 작전들을 이끌었으며, 1944년 6월 필리핀해 해전(Battle of the Philippine Sea)에서 일본 함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 해군 항공 전력은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전후 행보와 말년
스프루언스는 1946년까지 태평양 함대를 지휘했으며, 이후 해군전쟁대학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48년 7월 해군에서 은퇴한 뒤, 1952년부터 1955년까지 주필리핀 미국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했다. 1969년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산과 평가
1972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스프루언스급 대잠 구축함의 첫 번째 함선, USS 스프루언스(USS Spruance)가 취역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력으로 유명했던 그는 '인간 기계(human machine)'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완벽주의적 지휘관으로 평가받았다.
영화 《미드웨이 해전(The Battle of Midway)》에서는 배우 글렌 포드(Glenn Ford)가 그의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