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밤새 거의 멈추지 않고 내린 비 덕분에 아침에는 꽤 쌀쌀했다. 비제이도 나와 함께 깨어나 차를 끓여주었고, 나는 그동안 어제 여행의 기록을 적기 시작했다. 8시까지 붓을 놓지 않았고, 그 사이 차 두 잔을 더 마셨다. 오늘 일정은 딱 한 곳뿐이었다.
비제이가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월요일 오전 11시면 운하 위에서 배를 활용한 채소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볼거리가 되는 곳이라며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불과 1킬로미터 거리였다. 오전 11시에 서비스 아파트를 나섰는데, 아직도 보슬비가 내리고 있어 아버지는 집에 남기로 했다.
우리는 우산과 우비를 챙겼다. 이 도시에서는 집을 나서기 전 반드시 우산이나 우비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몸에 새기게 되었다.
운하 위에서 열리는 특별한 주간 채소 시장
좁은 골목길과 가느다란 운하, 그 위에 놓인 작은 다리들을 지나 약 2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시장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배는 두 척뿐이었고, 각 배마다 젊은 여성이 한 명씩 채소를 팔고 있었다. 채소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과일과 꽃이었다. 구매자 역시 한 명 있을까 말까 했으며, 외국인 구매자는 우리뿐이었다.
채소와 과일은 신선한 편이었지만 가격은 베네치아의 일반 가게들만큼 비쌌다. 그래도 내일 이동 중에 쓸 것을 대비해 몇 가지 사기로 했다. 내가 과일을 고르던 참에 배 주인이 다가와 제지했다. "셀프 서비스는 안 됩니다. 내려두세요."
나는 고른 과일을 다시 바구니에 넣었다. 그녀가 직접 과일과 채소를 골라 건네주었다. 인도인이 자신의 채소를 손대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눈에는 오만함과 경계심이 고스란히 읽혔다.
작지만 비싼 박물관
근처 광장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이름의 박물관이 있다.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기계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8유로. 규모가 작은 박물관 치고는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었다.
상인의 교활함, 그대로인 베네치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베네치아 상인의 교활한 태도는 지금 이탈리아 상인들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항에서는 루피를 유로로 환전할 때, 시장에 나가면 또 다른 유로 값을 부른다. 공항에서 200루피짜리 생수 한 병, 13킬로미터 버스 요금이 640루피, 화장실 사용료마저 160루피! 나흘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베네치아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오만하며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아 보였다.
교각 위의 거지
작은 다리 위에는 흑인 청년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도 멀쩡했고, 옆에 놓인 배낭도 품질이 좋아 보였다. 머리의 모자부터 발의 신발까지 전부 멀쩡해 보였다.
그의 애원은 매우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듯했다.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젊은이가 구걸하는 모습은 이 도시의 화려함과 어울리지 않았다. 지나가던 이탈리아 여성들도 이탈리아어로 화를 내듯 말을 걸었고, 그 얼굴에는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비는 계속되었다. 관광객들은 숙소에 숨어 있었고, 도시 전체가 텅 빈 듯 조용했다. 골목길은 텅 비어 있었고, 평소 광장 의자에 앉아 와인과 피자, 담배를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도 서비스 아파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