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항공계의 '워털루', 르부르제 하늘을 장악한 이탈리아

항공계의  워털루 , 르부르제 하늘을 장악한 이탈리아

르부르제에서 기다리는 이들

7월 2일 오후, 르부르제 공항에서는 경쟁자들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국무장관 알베르 사로(Albert Sarraut)는 로랑 에냐크(Laurent Eynac)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인파 속에서는 지난해 남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여성 비행사 마리스 바스티에(Maryse Bastié)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친구 기야메(Guillaumet)를 맞으러 온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의 다소 수척한 실루엣도 그곳에 있었다.

오후 4시, 첫 번째 충격

오후 4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관제탑이 항공기의 접근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기가 아니라 이탈리아기였다. 쿠피니(Cupini)와 파라디시(Paradisi)가 조종한 이 기체는 6,190km 구간을 단 17시간 32분 만에 주파한 것이었다.

알베르 사로의 둔중한 얼굴에서 입술은 공식적인 미소와 분함의 삐죽거림 사이를 오갔다. 승자에게 축하를 전할 새도 없이 두 번째 3발 엔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탈리아기였다. 붉은 동체에는 초록색 생쥐 세 마리 문장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5분 후에는 무솔리니 통령의 아들 브루노 무솔리니(Bruno Mussolini)가 탑승한 세 번째 이탈리아기마저 착륙했다.

패배의 냄새, '항공계의 워털루'

완패의 냄새가 진동했다. 이것은 말하자면 항공계의 워털루였다. 프랑스인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오후 7시 40분, 마침내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착륙한 것은 영국인 클러스턴(Clouston)이었다. 코도(Codos), 로시(Rossi), 기야메는 한참 뒤처져 있었고, 그들 기체가 활주로에 닿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너무 느린 항공기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내며 필사적으로 비행했음에도 결과는 처참했다.

박람회장의 사보이아 S.79

다음 날, 여유롭게 웃고 있는 이탈리아 선수단은 국제 박람회를 참관했다. 한편 르부르제에서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폭격기 사보이아-마르케티 S.79(Savoia-Marchetti S.79)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공화파에게 이 기체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자신들의 부대와 도시를 폭격하는 바로 그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실망에 잠긴 프랑스, 쏟아지는 비판

프랑스인들은 깊은 실망에 빠졌다. 우익 언론은 빈정거리며 몰아세웠다. "피에르 코트(Pierre Cot) 항공장관은 파시스트 선전의 일괄인인가? 명백히 이 경주를 연기하거나 아예 취소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물론 지나친 비관은 금물이다. 당시 프랑스 항공은 분명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특히 남대서양 횡단 비행에서 그러했다. 그럼에도 르부르제의 이날만큼은 프랑스 항공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굴욕으로 남았다.

이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