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영국은 왜 EU를 탈퇴했을까? 브렉시트의 배경과 핵심 이유

2016년 6월 영국에서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영국은 EU(유럽연합) 탈퇴를 공식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유예 기간과 협의 끝에, EU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이주·무역·이민·안보 협력 등에 관한 새로운 협정이 2020년 12월 31일 발효되며 '브렉시트'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은 대체 왜 EU 탈퇴를 선택했을까요?

국민투표로 갈라진 영국 사회

영국에서는 EU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독립당(UKIP)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었고, 캐머런 총리가 속한 여당 내부에서도 EU 회의론자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3년 1월 캐머런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하며 상황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캐머런 총리 본인은 잔류파였습니다. 그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잔류 지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탈퇴파를 누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잔류파 48.1% 대 탈퇴파 51.9%로 탈퇴 진영이 승리한 것입니다. 국민투표 직후 캐머런 총리는 사임을 발표했고, 후임으로 취임한 메이 총리가 EU 탈퇴 협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국민투표는 영국 사회가 두 진영으로 뚜렷하게 갈라져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잔류파는 젊은 층과 고학력·전문직 중심이었던 반면, 탈퇴파에는 중장년층, 블루칼라 노동자, 저소득층 등 엘리트와 거리가 있는 계층의 지지가 많았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경제 개발에서 소외된 잉글랜드 농촌 지역에서 탈퇴표가 몰렸습니다.

블루칼라 노동자와 저소득층 사이에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불만이 컸습니다. 그들은 EU 역내 자유 이동 덕분에 이민자가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영국이 EU 탈퇴를 원했던 이유

영국이 EU 탈퇴를 원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며, 이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를 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국의 주권 문제
  2. 인구 증가로 인한 실업 불안
  3. 이민 문제와 세금 부담
  4. 통상 협정 등 경제 문제

각각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의 주권 문제

EU 회원국은 기본적으로 EU 법규를 준수해야 합니다. 사실 이 규정은 많은 회원국이 불만을 품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법률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영국도 EU 내에서 일부 법률을 제정·개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영국 정부의 권한은 여전히 EU 기구에 비해 크게 열세입니다.

따라서 따르고 싶지 않은 법이라도 어쩔 수 없이 준수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입법 권한이 없다는 것은 분명 큰 불편함으로 작용합니다.

인구 증가로 인한 실업 불안

EU 회원국 간에는 기본적으로 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기 때문에, 이민자 급증에 따른 인구 폭증이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EU 회원국 국민들이 영국으로 이주해 왔지만, 국가가 급격한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병원과 학교가 부족해졌습니다.

또한 영국에서 일하려는 이민자가 너무 많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25세 미만 청년 실업률이 25세 이상의 약 4배에 달하는 영국에서는 일자리 과잉 공급 상태가 이어졌고, 인력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구조가 되었습니다.

영국 국민과 이민자가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영국인들의 반(反)이민 정서는 점점 강해졌습니다.

이민 문제와 경제 격차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은 2004년 무렵 EU에 가입했습니다. EU 회원국 간 자유 이동은 곧 이민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폴란드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찾아 영국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영국은 사회보장이 충실한 나라로, 의료비 무료, 고용보험, 빈곤층 지원 제도, 공공주택 등 다양한 보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영국의 아동수당 제도는 일본이 아동수당을 도입할 때 참고한 모델이기도 했습니다.

이민자라도 적절한 절차를 밟으면 이러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보장 혜택을 위해 영국으로 이주하는 이민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에 들어가는 세금을 내는 것은 영국 국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민자를 위한 사회복지 예산이 계속 늘어나면서, 본래 경제 정책에 쓰일 예산까지 사용되다 보니 국민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민자가 기성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에 대해, 노동 시장이 분리되어 있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영국 노동자들이 이민자를 위협으로 느낀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EU 탈퇴파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고용 상황의 침체는 이민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과거 영국은 완전고용과 노동자 사회보장을 중시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79년 대처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크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국영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해외 자본의 금융시장 진입 허용 등 금융 자유화를 앞당기며 국민을 자유경쟁에 내던졌습니다.

그 결과 국내 경제 격차, 즉 지역 간 경제 격차가 발생했습니다. 금융시장 자유화와 함께 런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 중심지로 크게 성장했지만, 반면 산업 지역은 쇠퇴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들 노동자에게 이민자는 위협으로 보였고, 그들은 EU 탈퇴에 표를 던졌습니다.

통상 협정 등 경제 문제

EU 회원국은 기본적으로 회원국이 아닌 나라와 개별 통상 협정을 체결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영국과 직접 통상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통해 진행해 온 것이 그 예입니다.

영국은 EU 이외의 국가와도 많은 교역을 하고 싶었지만, 통상 협상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은 EU 탈퇴가 현실이 되면 미국, 호주, 일본 등과 자유롭게 새로운 통상 협정을 체결할 수 있어 경제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외교 정책의 특수성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외교 정책의 특수성입니다.

19세기 영국은 전성기를 맞아 세계 각지에 식민지와 자치령을 보유했습니다. 1931년에는 캐나다, 호주 등 자치령 6개국과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하는 영연방(Commonwealth)이 성립되었고, 이후 독립 국가가 탄생할 때마다 영연방에 가입했습니다. 영국은 지금도 이들 국가와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영국 청교도들이 건너가 세운 미국 역시 영국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결국 영국은 '유럽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영연방의 리더'이자 '미국의 동맹국'이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은 유럽 대륙 국가들과 거리를 두는 외교 노선을 계속 추구해 왔습니다.

실제로 1952년 석탄·철강 공동체(ECSC)를 시작으로 유럽 통합의 틀이 만들어졌지만, 영국이 가입을 신청한 것은 1961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이때 영국과 미국의 깊은 유대관계를 경계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영국의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1967년 영국이 다시 신청했지만 역시 프랑스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1973년에야 EC(유럽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위를 보면 영국의 EU 탈퇴가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U 탈퇴를 원하는 이유는 이 외에도 다양하지만, 위의 요인들을 종합해 보면 영국이 EU에 얽매여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고 느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EU 회원국으로 남는 것의 장점도 있지만, 영국은 현재로서는 단점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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