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에서 새로운 국가들의 등장은 그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프로이센은 15세기 이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을 통치해 온 호엔촐레른 가문의 활약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며, 이 지역은 훗날 독일 제국의 모태가 되었다.
또 하나의 강대국인 러시아는 두 민족에게서 기원했다. 모스크바를 건설한 모스코바인과, 리우리크의 지휘 아래 작은 공화국 노브고로드를 세운 스웨덴인이 바로 그들이다.
18세기 유럽의 새로운 국가들
당시 유럽에 새롭게 성장한 국가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였다. 각국의 형성 과정과 대표적인 군주들의 통치를 살펴보자.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를 구성한 영토
1714년 오스트리아는 같은 이름의 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네덜란드, 그리고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파르마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제국의 군주는 동시에 독일 황제이기도 했다. 각 영토는 서로 다른 수도와 자체 정부를 갖고 있었지만, 모두 한 명의 황제 아래 통합되어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치세
황제 카를 6세의 뒤를 이어 그의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작센과 바이에른 선제후 등 일부 세력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프로이센,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후에는 영국까지 개입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유럽 열강에게 포위된 에너지 넘치고 인정 많은 여왕은 오스트리아의 분할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실레지아 지방만 프로이센에 할양하는 데 그쳤다.
이후 그녀는 실레지아 회복을 위해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와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러시아, 프로이센과 함께 폴란드 분할에 가담했고, 폴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요제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뒤를 이은 것은 아들 요제프 2세였다. 그는 10년간의 철권 통치(1780~1790) 동안 법 앞에서의 평등을 선포하고 독일어를 왕국 전체의 공용어로 확립했으며, 가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러나 급진적인 개혁은 왕국 곳곳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개혁에 대한 차가운 반응에 환멸을 느낀 채 생을 마감했다.
프로이센
프로이센은 15세기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을 통치해 온 호엔촐레른 가문의 업적으로 18세기에 강대국으로 성장했으며, 이 영토는 훗날 독일 제국으로 이어져 그 위상은 제1차 세계대전(1914)까지 이어졌다.
원래 프로이센은 서로 고립된 작은 국가들의 집합체였고, 호엔촐레른 가문이 이들을 통합했다. 자연 방벽이 없던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 최강의 군대를 만들었다.
프로이센의 번영은 크게 두 명의 왕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군인왕' (1713~1740)
강력한 군대만이 조국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징병제를 도입하며 "모든 프로이센인은 병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고 선언했다. 그는 궁정에 돈을 낭비하지 않았는데, 궁정 신하는 37명에 불과했고 가구는 소박한 나무로 만든 것이 전부였다. 모든 재정은 군대 강화에 투입되었다. 그의 유일한 오락은 장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부대 훈련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장교단은 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평민은 기수 계급까지만 승진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공산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프리드리히 2세, '대왕' (1740~1786)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아들로, 밝고 근면한 계몽군주이자 유럽 최고의 군사 지도자였다. 그는 오스트리아로부터 실레지아를, 폴란드로부터 폴란드령 프로이센을 차지하는 등 여러 영토를 정복했다.
23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유럽 최강의 군대를 만들어 병력을 두 배(8만 명 → 16만 명)로 늘렸고, 영토도 12만㎢에서 20만㎢로 확장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산업과 상업을 진흥했으며,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보호했다. 프로이센은 이미 유럽의 강대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러시아
러시아의 탄생
슬라브족과 핀족 부족들은 16세기까지 몽골 타타르족의 지배를 받으며 거주했다. 이들은 당시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
이반 뇌제
16세기 초, 러시아에서 가장 유력한 소국 중 하나였던 모스코바 공국의 수장 이반 뇌제는 몽골 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해 수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모스코바 러시아 국가를 건설했다. 그는 스스로 '차르', 즉 전 러시아의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신민의 생명과 재산을 소유한 절대 군주로서 통치했다. 사회는 두 계급으로 나뉘었다. 토지를 소유한 보야르(귀족)와 중세 농노처럼 살아가던 무직크(농민)였다.
그는 무력으로 러시아의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했다.
로마노프 왕조
이반 뇌제 사후 내부 권력 다툼이 이어지던 중, 미하일 로마노프가 차르로 즉위하면서 1917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처형될 때까지 이어지는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다. 이 왕조에서 가장 걸출한 군주는 표트르 1세 대제였다.
표트르 1세 대제 (1689~1725)
표트르 대제는 17세에 즉위했다.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으로 절대 권력을 행사했으며, 매우 활동적인 성격의 그는 자신의 백성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a) 서양 문화의 도입: 서양 문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그는 신분을 숨기고 유럽으로 건너가 조선술과 요새 축조술을 배우고 학교, 도서관 등을 직접 시찰했다. 두 차례의 유럽 순방 후 귀국한 그는 많은 유럽 장인과 기술자들을 초빙해 함선을 건조하고 모스크바의 초가집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건물들을 세웠으며, 학교·아카데미·인쇄소·도서관·공장을 설립했다. 심지어 신민들에게 낡은 의복을 바꾸도록 강제했고, 저항이 일어나자 채찍으로 진압했다. 그는 유럽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발트해 연안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를 건설했으며, 해군·공병·의학 학교 등을 세워 농업, 상업, 산업의 발전을 이루었다.
b) 발트해 정복: "유럽으로 통하는 창문"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튀르키예와 스웨덴에 전쟁을 일으켜 각각 흑해와 발트해 접근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과의 전쟁에서만 승리하여 발트해 연안 일부를 획득했고, 그곳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를 건설했다.
예카테리나 2세 대제 (1762~1796)
표트르 대제의 뒤를 이은 것은 표트르 2세와 표트르 3세였다. 어리석고 무능했던 표트르 3세의 아내는 독일 공주 출신의 예카테리나였다. 남편의 무능에 지친 그녀는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폐위시키고 여제로 즉위했으며, 33년간의 통치에서 이룩한 업적으로 인해 훗날 '대제'라 불리게 되었다.
- 내정: 코사크의 반란을 진압하고, 볼가와 우크라이나 지역을 외국 이민자들로 개척했다. 감자 재배를 도입하고 병원을 설립했으며, 세바스토폴 항구와 같은 도시를 건설했다.
- 외정: 튀르키예와의 전쟁에서 크림반도와 흑해 연안을 빼앗아 흑해 접근로를 확보했다. 또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하여 리투아니아 등의 영토를 차지했고, 폴란드는 1918년까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처럼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를 유럽의 주도 강대국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