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토 사후 위태로워진 유고슬라비아
티토가 사망한 뒤 '유고슬라비아'라는 다민족 국가는 위험할 정도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18~1941년 시절처럼, 자발적으로 유고슬라비아에 합류하지 않았던 민족들이 외부 세력의 부추김 속에 독립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는 베르사유 조약이 낳은 산물이었다. 이 땅에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 무슬림,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린인, 그리고 티토의 결정으로 탄생한 '마케도니아인'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198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국가의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내부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1990년 슬로베니아는 독일과 바티칸의 지원을 받아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유권자의 94.8%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에 찬성했다. 베오그라드는 이러한 흐름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군사적 조치를 준비했다. 슬로베니아 측은 동원령을 내렸지만, 유고슬라비아군과 정면 대결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비대칭 전술을 채택했다. 그리고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전쟁의 시작
다음 날 유고슬라비아군 제13군단이 슬로베니아 국경으로 진격했다. 슬로베니아인들은 도로 봉쇄와 시위로 맞섰지만 먼저 총성을 울리지 않았다. 1991년 6월 27일 오후 2시 30분, 유고슬라비아 장교가 먼저 발포하면서 참혹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6월 27일, 유고슬라비아군은 제1기갑여단과 제306대공포병연대를 선봉으로 삼아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 영토에 진입했다. 유고슬라비아군은 브르니크 공항을 손쉽게 점령했고, 동시에 항공기를 동원해 전단을 살포했다.
유고슬라비아군은 무장 저항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슬로베니아 민병대가 SA-7 휴대용 대공 미사일로 헬리콥터 두 대를 격추했을 때 완전히 발이 묶였다. 같은 시각 슬로베니아군은 브르니크 공항에서 반격을 개시해 치열한 전투 끝에 그곳에 주둔하던 유고슬라비아 병력 대부분을 포획했다.
한편 유고슬라비아 제32보병사단의 전차 부대는 오르모주에서 진격이 저지당했다. 그럼에도 유고슬라비아군은 거의 모든 국경 통관점을 장악하며 슬로베니아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로부터 차단하는 데는 성공했다.
슬로베니아의 전면 반격
그러나 다음 날인 6월 28일, 슬로베니아군은 전면 반격에 나섰다. 여러 전선에서 유고슬라비아 부대가 포위됐고, 기갑 종대 하나도 궤도에 올라타지 못하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공군은 공습을 감행했지만 슬로베니아군은 유고슬라비아 T-55 전차 2대를 파괴하고 3대를 노획했다. 이날 유고슬라비아군은 전사 3명, 부상 16명, 포로 98명의 피해를 입었다.
홀메츠 국경검문소 전투에서 슬로베니아군은 전사 2명의 희생을 내면서 유고슬라비아군 3명을 사살하고 91명을 포로로 잡았다. 유고슬라비아 공군은 새로운 공습을 이어갔으나, 하루가 저물 무렵 유고슬라비아군은 심한 압박 속에 병사들의 집단 탈영까지 겹치며 수세에 몰렸다. 다음 날 밤 슬로베니아군에게 포위된 유고슬라비아 부대는 류블랴나 공항에서 항복했고, 슬로베니아군은 추가로 여러 대의 전차도 확보했다.
동시에 유럽의 중재로 외교전도 개시되었다. 양측은 휴전에 합의했지만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고, 6월 30일에는 드라보그라드, 톨민, 보베츠의 유고슬라비아 수비대가 항복했다.
휴전 협정으로
7월 1일, 철수를 시도하던 제306대공포병연대는 포위당했다. 다음 날 유고슬라비아군은 크라코프 숲에서 큰 손실을 입었고, 제4보병사단 역시 브레가나의 슬로베니아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 슬로베니아군은 국경 통관점 4곳도 되찾았다.
같은 날 밤 슬로베니아 측이 휴전을 제안했지만 유고슬라비아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7월 3일에는 강력한 차량화 부대가 베오그라드에서 슬로베니아 방면으로 출발했으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기계적 고장으로 인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며칠 뒤 휴전 협정이 마침내 발효되었고,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군의 철수를 허용했다. 철수는 1991년 10월 26일에 완료되었다.
전쟁의 결과와 교훈
전투 결과 유고슬라비아군은 44명이 전사하고 146명이 부상했으며 약 5,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슬로베니아군은 18명이 전사하고 182명이 부상했다. 주로 기자였던 외국인 12명도 목숨을 잃었다. 물적 손실 면에서 유고슬라비아군은 전차 31대, 장갑차 22대, 헬리콥터 6대, 화포 87문과 다수의 대공포·발사기를 상실했다.
이 분쟁의 어두운 대목은 이른바 '홀메츠 학살'이다. 무장한 슬로베니아인들이 항복하려던 유고슬라비아 병사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측 병력은 유고슬라비아군 약 22,300명, 슬로베니아군 약 45,000명으로, 소규모 전쟁이었지만 이 짧은 충돌은 곧 크로아티아·보스니아로 번지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