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협 노르망디 연안 서쪽에 자리한 영국 왕실 속국 저지(Jersey) 섬의 라우그 비(La Hougue Bie)는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신석기 시대 기념물입니다.
1925년 처음 발굴된 이 유적은 적어도 기원전 3500년까지 의식 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대한 마운드 아래에는 서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아르모리카 통로 무덤(Armorican Passage Tombs)군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사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높이 12.2m에 달하는 흙 무덤 아래에는 길이 18.6m의 복도가 이어집니다. 내부에서는 도자기 조각들과 최소 8명의 유해가 발견되었으며, 과거 불확실한 시점에 도굴당했다는 흔적 또한 남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단순한 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 의식이 거행되던 '의례 공간'으로 확인되었으며, 매장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원래 입구를 찾아내고 복원한 뒤 춘분과 추분의 일출 시각 내부를 관찰한 결과, 입구 복도의 정교한 방향 설정 덕분에 태양광선이 고분 깊숙이 스며들어 안쪽 지석방(內室)을 밝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이 장소의 의식적 용도가 후기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이미 끝났음을 보여줍니다.
언덕 꼭대기에는 두 개의 채플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는 12세기 중세 시대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16세기에 지어져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792년, 필립 도베르뉴(Philippe d'Auvergne)가 영국군 신호소 겸 요새인 프린스 타워(Prince's Tower)를 건설하면서 두 채플은 모두 탑 구조물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이 탑은 고분 발굴이 시작되기 불과 1년 전인 1924년에 철거되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채널 제도를 점령하면서 언덕에는 방어용 벙커가 새롭게 들어섰고, 그 입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벙커는 봉분 바로 옆에 인접해 있으며, 그 구조물은 아래에 놓인 봉분 위로 솟아 있습니다.
오늘날 라우그 비는 대중에게 개방된 박물관입니다. 섬의 지질학·고고학 전시관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나치 포로로서 저지 방어 공사에 동원되었던 유럽 각지 노동자들의 전시와 1835년 존 고셋(John Gosset)이 가져온 이집트 미라 전시도 함께 선보입니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누구나 고인돌 내부에 들어가 주 실(主室)을 직접 관람할 수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이런 경험이 가능한 곳은 어쩌면 이곳뿐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