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고고학계의 시선은 한결같이 메소포타미아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미 한 세기 전의 탐험을 통해 성경에 언급된 장소들의 실존이 확인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탐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보다 자금이었습니다. 발굴 단체들은 국가 및 민간 후원을 끌어내기 위해 영리한 전략을 택했는데, 바로 자신들이 찾으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한 문자·고고학적 확증이라는 점을 '공익적 가치'로 내세운 것입니다. 이 홍보 전략은 큰 호응을 얻었고, 결과적으로 발굴 자금 확보에는 성공합니다.

그 주역 중 한 사람이 오스틴 헨리 레이야드 경(Sir Austen Henry Layard)입니다. 본격적으로 유적 조사에 몰두하기 전 그는 중동과 극동 일대를 폭넓게 여행하며 외교관으로서 경력을 쌓았는데, 특히 1842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 주재 영국 대사관에서 활동했습니다.
대사의 격려에 힘입어 레이야드는 1845년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향했고, 자신의 진정한 열정인 고고학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첫 번째 목표는 모술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칼후(Calah) 유적, 곧 님루드로 더 잘 알려진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유적은 2015년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약 6년간의 발굴에서 그는 궁전과 건물군, 수많은 조각상과 부조를 지상으로 드러냈으며, 그중에는 살만에셀 3세의 검은 오벨리스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출토된 유물 대부분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 언급된 도시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레이야드는 자신이 고대 도시 니네베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발견기를 담은 『니네베와 그 유적(Nineveh and Its Remains)』을 출간했고, 이 책은 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새로운 탐험대 파견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846년 레이야드는 또 다른 유적지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는 알지 못했지만, 이곳이야말로 실제 니네베였습니다. 이 발굴의 핵심 성과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627년)의 도서관 발견입니다.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약 22,000장이 이곳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몇 년 후, 이 점토판들은 발견된 다른 판들과 함께 조지 스미스(George Smith)에 의해 해독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소위 『길가메시 서사시』 제11번 태블릿도 있었습니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스미스는 판을 읽다가 그 의미를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2천 년의 망각 이후 이 문자를 읽은 최초의 사람이다." 그리고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어디를 헤매며 돌아다니다, 놀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조차 벗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1872년 12월 3일, 스미스는 이번에는 옷을 단정히 갖춘 채 런던의 성서고고학협회 회원들 앞에서 자신의 번역본을 공개 낭독했습니다. 그 점토판에는 칼데아식 대홍수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고, 이는 노아의 홍수담이 원작이 아니라 더 오래된 이야기의 각색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아시리아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점토판들 가운데, 구약성서의 『아가』에게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시'라는 칭호를 빼앗아 올 작품도 숨어 있었습니다. 『아가』는 기원전 6~3세기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정체가 밝혀지기까지는 1951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해 미국의 아시리아학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Samuel Noah Kramer)는 훗날 저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된다(History Begins at Sumer, 1956)』의 재료가 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이스탄불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의 책에 따르면, 전시된 판들 중 2461번 점토판이 보존 상태가 좋아 그의 눈길을 끌었고, 들여다본 순간 그것이 연(聯)으로 구성된 시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슈신 사랑 노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기록을 기원전 2000년경의 것으로 추정하며, 우르의 왕이 여신 이난나와 그녀의 여사제 한 명을 통해 상징적으로 결혼하는 '신성한 결혼' 연례 의식의 일부로 봅니다. 이 의식은 매년 설날 거행되었으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가운데 신부가 시를 낭송했습니다. 이 특별한 시는 기원전 1972~1964년(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2037~2029년으로 추정)에 우르를 통치한 슈신 왕에게 헌정된 작품입니다.

크레이머의 원 번역을 스페인어로 옮긴 하이메 엘리아스(Jaime Elías) 버전에 따르면, 시의 처음 두 연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발견들은 역사 개념 자체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경 본문보다 수세기나 거슬러 올라가는 기록들이 잇달아 확인되면서, 인류는 과거를 한층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길, 곧 현대 역사학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