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해저 36m에 잠긴 선사시대 미술관, 마르세유 코스커 수중동굴(Cosquer)의 비밀

최근 태국 어린이들의 동굴 고립 실화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프랑스 남부에 숨겨진 특별한 장소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벽화로 가득한 동굴이 통째로 물속에 잠겨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곳, 코스커 동굴(Grotte Cosquer)입니다. 지금은 해저 약 36m 깊이에 위치한 좁은 터널을 따라 다이빙해야만, 벽화가 그려진 넓은 '금고(vault)' 방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사시대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곳을 찾았던 후기 구석기 시대, 즉 마지막 빙하기에는 기후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해수면도 낮았습니다. 당시 동굴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6km 떨어진, 넓은 대초원이 펼쳐진 계곡 기슭, 해발 약 120m 지점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해저 36m에 잠긴 선사시대 미술관, 마르세유 코스커 수중동굴(Cosquer)의 비밀

약 1만 년 전 홀로세(Holocene)에 들어 기온이 온화해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했고, 해안선은 오늘날과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형태로 후퇴했습니다. 결국 동굴 입구는 바다에 잠겼고, 해수는 지금도 본 회랑을 따라 흘러들어 동굴 내부 일부를 침수 상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인의 방문은 물론 다이버의 출입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접근 통로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막혀 있고, 연구자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통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마뇽인(Cro-Magnon)이 이 동굴을 사용했던 시기는 후기 구석기 문화 중 하나인 그라베티안(Gravettian, 상부 페리고르 문화라고도 함)입니다. 모닥불 흔적은 발견되었지만 인골이나 도구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코스커 동굴이 주거지가 아니라 의식을 위한 종교적 성소였음을 시사합니다. 내부가 벽화로 장식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조차 공감마술에서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해석이 분분하여, 이 글에서는 구체적 해석은 생략하겠습니다.

해저 36m에 잠긴 선사시대 미술관, 마르세유 코스커 수중동굴(Cosquer)의 비밀

그라베티안 단계 벽화의 대표 모티프는 바위면에 손을 대고 안료를 불어 넣어 만든 '손 스텐실(hand print)'입니다. 총 65개가 발견되었으며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는데, 특이하게도 대부분 한 개 이상의 손가락이 없습니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이를 의식적 절단의 증거로 보지만, 다른 이들은 일종의 기호(sign) 체계로 해석합니다. 돌에는 십자가·선·점 등의 상징이 새겨져 있고, 말과 사슴 등 동물 표현도 보이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뚜렷한 성적 요소를 지닌 인간 묘사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솔류트레안(Solutrean)의 그림입니다. 이 시기는 석기에 나무 자루(정확히는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끼우는 혁신이 등장해 석기 제작 기술의 전환점으로 꼽히며, 유명한 구석기 시대 '비너스' 조각상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동물 모티프는 계속 이어져 말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염소·메가케로스·들소·아우록스도 등장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물개, 펭귄, 고래류, 심지어 해파리까지 포함된 해양 동물군입니다.

전체적으로 약 500점의 그림과 조각이 확인되었으며, 연대는 기원전 27,000년~19,00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호모 사피엔스가 남긴 작품인 만큼, 동굴에 보존된 '부상당한 남자' 그림은 어쩌면 예언적인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상당수 그림은 이미 해수에 잠겨 유실된 상태입니다.

해저 36m에 잠긴 선사시대 미술관, 마르세유 코스커 수중동굴(Cosquer)의 비밀

1985년, 스쿠버다이버 앙리 코스커(Henri Cosquer)는 다이빙 중 바위틈으로 뻗은 구멍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이 천연 동굴로 이어질 것이라 직감했습니다. 그는 지느러미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빛이 닿지 않는 좁은 통로를 헤엄쳐, 길이 175m에 달하는 침수 구간 끝에서 지름 약 50m의 반쯤 잠긴 방에 도달했습니다. 날카로운 종유석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플래시 빛뿐이었기에 무엇을 담았는지도 모른 채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정적 순간은 필름을 공개했을 때였습니다. 사진 속에는 손 스텐실을 비롯해 명백히 인공적인 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이 특이한 장소로 돌아왔고,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예술의 세계가 눈앞에 열렸습니다. 그들은 너무 감탄한 나머지 당국에 알리지 않았고, 불행이 닥칠 때까지 여러 차례 재방문했습니다.

1991년, 접근 터널에서 다이버 3명이 갇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해양 고고학 연구국(Direction des recherches Archéologiques sous-marines, DRASM)과 지역 고고학 국(Service régional de l'archéologie)이 즉각 개입했고, 같은 해 9월 프랑스 문화부 소속 조사선 Archéonaute호의 지원 아래 본격 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현장을 지휘한 이들은 선사시대 전문가 장 쿠르탱(Jean Courtin)과 후기 구석기 및 동굴 벽화 예술의 권위 장 클로트(Jean Clottes)였습니다. 쿠르탱은 전문 다이버라는 강점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벽화의 연대를 약 2만 년 전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라스코 동굴 벽화보다 더 오래된 것입니다(그래서 라스코의 그림이 더 역동적이고 현대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밀 연구에는 시간과 자원이 필요했고, 자재 운반도 어려웠기에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동굴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외는 다행히 단 한 번, 다큐멘터리 Le Secret de la grotte Cosquer 촬영 때뿐이었습니다.

1994년, 기다려온 과학적 연대 측정이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제시된 연대가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동안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탄소연대측정 기술은 그렇게 오래된 시료에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실제로는 최대 5만 년 된 유기물에도 적용 가능하지만). 그러나 벽화 위를 덮고 있는 방해석 층은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므로 위작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고, 1998년 현장에서 발견된 목재 잔해와 꽃가루 분석으로 진위가 최종 확인되었습니다.

해저 36m에 잠긴 선사시대 미술관, 마르세유 코스커 수중동굴(Cosquer)의 비밀

2002년에는 뤼크 반렐(Luc Vanrell)이 새로운 조사 캠페인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문 다이버이자 난파선 수중 사진작가로, 작가 생텍쥐페리의 실종된 비행기를 발견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1년 뒤에는 다시 쿠르탱과 클로트의 지휘 아래 세 번째 영상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입구를 막았던 콘크리트 블록은 강철 문으로 교체되었고, 코스커 동굴은 다시 고요한 잠든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상부에서 엘리베이터로 연결되는 입구를 만들려던 프로젝트도 무산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소식은 2016년 것입니다. 대중 관람용 실물 크기 복제본 제작을 위한 3D 디지털 재현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원본을 직접 볼 수 없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르세유 해안의 칼랑크(Calanques)—수직 벽이 바다로 돌출한 좁은 암석 지형—중 칼랑크 드 라 트리페리(Calanque de la Triperie)가 위치한 카프 모르기우(Cap Morgiou) 주변을 산책하며, 그 아래 바다 속에 잠든 동굴을 상상해 보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