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자금성 정중앙 지하에서 발견된 쿠빌라이 칸의 궁전…600년 원궁 미스터리 해결

2016년, 베이징 고궁박물원(자금성)의 고고학자들은 발굴 현장에서 13세기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이 세운 원나라 시대의 도자기 파편과 부서진 기와를 확인했습니다. 이 발견은 중국 고고학계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원궁(元宮)의 정확한 위치 문제를 해결한 순간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쿠빌라이 칸의 궁전은 연대순으로 쌓인 세 개의 궁전 바로 아래, 자금성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적은 무려 600년 이상 동안 박물관 전문가들의 발밑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2015년에 처음 발견되었으나, 이후 진행된 분석을 통해 유물의 연대와 신원이 확정되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쿠빌라이의 궁전이 자금성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왔지만, 그 위치가 자금성의 정중앙일 것이라고 의심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금성은 명나라 시대인 1420년에 건립되어 청나라 시대인 1644년부터 1911년까지 중국 황실의 궁궐로 사용된 곳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진 발굴 작업이 쿠빌라이 궁전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금성 이후 건축물의 축조 기법과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금성 정중앙 지하에서 발견된 쿠빌라이 칸의 궁전…600년 원궁 미스터리 해결

몽골 제국의 다섯 번째 대칸, 쿠빌라이 칸

쿠빌라이 칸은 1260년부터 1294년 사망할 때까지 몽골 제국의 다섯 번째 대칸(Great Khan)이었습니다. 징기스칸의 손자로, 1264년까지 이어진 내전 끝에 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올랐습니다. 이 내전은 제국 전체의 쇠퇴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제국의 영향력은 중국과 몽골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여전히 태평양에서 흑해까지, 시베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뻗어 있었으며, 당시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을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였습니다.

쿠빌라이는 1271년 중국 황제의 역할을 수행하며 몽골·한국·중국을 통치하는 새로운 왕조 '원(元)'을 선포했습니다. 1279년에는 중국 남부에 잔존하던 송나라 군대를 최종적으로 격파하며, 중국 전역을 통치한 최초의 외족 출신 황제가 되었습니다.

지층처럼 쌓인 네 개의 궁전

발굴 조사 결과 총 4개의 기초층이 순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상층에는 청나라 시대의 궁전이, 그 아래로 명나라 후기 궁전과 명나라 초기 궁전이 위치했으며, 마지막으로 최하층에서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 궁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견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해당 유적이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원나라 궁궐 구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자금성 건설이 시작되기 전, 당시의 다른 모든 건축물들이 철거되었기에 이 유적만이 원나라 궁궐의 흔적을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