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3,500년 전 이집트 '텔 엘 레타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고학자들이 재현한 고대 정착지

2007년부터 이집트 텔 엘 레타바(Tell el-Retaba) 유적지에서 폴란드 고고학 조사단과 함께 발굴 작업을 진행해 온 슬로바키아 고고학자들이, 3,500년 전 이곳 정착지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 영상은 수년간 축적된 고고학적 발견과 출토된 구조물을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작은 가옥에서 시작해 웅장한 파라오 요새에 이르기까지, 제2중간기부터 신왕국 시대까지 약 500년간(기원전 17세기~12세기) 이 도시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모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나일 삼각주와 홍해를 잇던 전략적 요충지

텔 엘 레타바 유적지는 이집트 북동부,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자가지그(Zagazig)와 이스마일리아(Ismailia) 사이에 펼쳐진 와디 투밀라트(Wadi Tumilat) 일대로,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의 원자재 접근로를 통제하는 핵심 거점이었습니다.

3,500년 전 이집트  텔 엘 레타바 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고학자들이 재현한 고대 정착지

파라오 시대에 이곳이 지닌 중요성은 나일 삼각주와 홍해를 연결하던 고대 수로가 바로 텔 엘 레타바를 관통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식수 공급은 요새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 국경을 넘어 현재 수에즈 운하 일부 구간인 비터 호수(Bitter Lakes) 지역으로 향하는 캐러밴과 베두인들에게도 생명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3,500년 전 이집트  텔 엘 레타바 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고학자들이 재현한 고대 정착지

힉소스족의 거점에서 파라오의 요새로

흥미롭게도 텔 엘 레타바의 주민이 늘 이집트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2중간기(기원전 17~16세기) 이전부터 이곳에는 전차와 군마를 갖춘 여러 차례의 이주 물결을 통해 도래한 힉소스족(Hyksos)이 거주했습니다.

힉소스족은 단일 민족이 아니라 여러 집단의 혼합체였지만, 대다수는 가나안과 시리아 지역 출신으로 주로 상업 활동에 종사했으며, 상당수가 이집트의 문화와 관습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습니다.

힉소스 왕국이 멸망하고 이집트에 신왕국(기원전 16~11세기)이 들어서면서 인구는 다시 이집트인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파라오 람세스 2세(Ramses II)와 메렌프타(Merenptah)는 소위 '바다 민족'의 침공으로부터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비적인 요새 건설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학 발굴 조사를 통해 기원전 17~12세기에 걸친 시기의 흙벽돌 건축물 다수, 무덤, 작업장, 그리고 웅장한 기념비적 문(門)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성서 속 도시 '피톰'과의 연관성?

일부 학자들은 텔 엘 레타바가 성서에 이스라엘 백성이 탈출을 위해 떠난 장소로 언급된 도시 '피톰(Pithom)'과 동일한 곳이라고 추정합니다. 다만 현재까지 이를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학계에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