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도시 로마의 심장부에서 고고학자들이 석관을 품은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이 무덤은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인물, '늑대의 아들' 로물루스와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포룸(Forum)의 쿠리아-코미티움(Curia-Comitium) 복합 단지 옆에서 지하 공간이 발굴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길이 약 1.4m의 응회암 석관과 함께, 아마도 제단으로 추정되는 원형 구조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유명한 라피스 니게르(Lapis Niger) 근처에서 이뤄진 발견
이탈리아 언론 전체가 이 소식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콜로세움 고고학 공원의 관장 알폰시나 루소(Alfonsina Russo)가 "탁월한 발견"이라고 평가한 이 유적은 로마 포룸, 그중에서도 쿠리아-코미티움 복합 단지 근처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은 고대 도시의 심장부로, 원로원 의원들이 회의하던 고대 쿠리아(Curia)와 공화정 초기인 기원전 6세기에 로마 시민들이 모이던 코미티움(Comitium)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발굴된 '무덤'에는 일종의 제단과 길이 약 1.4m의 응회암 석관이 있었지만, 석관은 빈 상태였습니다. 초기 정보에 따르면 기원전 6세기로 추정되는 이 지하 공간(히포게움)은 쿠리아 입구 계단 아래 암반을 파내어 조성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로물루스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지하 공간 입자. ©Parco Colosseo
특히 이 무덤은 1899년 포룸에서 발굴된 응회암 비석, 유명한 라피스 니게르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로마인들은 이 비석을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자 로물루스와 연결 지어 왔습니다. 로마 건국은 기원전 753년, 혹은 이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역사학자 알렉상드르 그랑다치(Alexandre Grandazzi)에 따르면 기원전 750년에서 70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늑대에게 길러진 쌍둥이 형제 중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인 뒤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기원전 6~5세기로 연대가 추정되는 라피스 니게르 비석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중 일부는 왕(rex)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라피스 니게르 비석. © Valery Rokhin - Shutterstock
"탁월한 인물만이 이곳에 묻히거나 기려질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미 당시 로마 주민들은 이 성역의 본래 의미를 잊어버리고 서로 상충하는 여러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중 하나는 라피스 니게르가 '로마의 첫 번째 왕' 로물루스의 무덤을 표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존 여부에 대해 역사학자들조차 의견이 분분한 인물인 만큼, 포룸에서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젖을 먹이는 카피톨리누스의 늑대. 기원전 500년경 청동상. © Leemage/AFP
로마 세계 전문 역사학자 얀 르 보크(Yann Le Bohec)는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과장하지 않더라도 이 발견은 흥미롭다. 탁월한 인물만이 이곳에 묻히거나 기려질 수 있었다. 도시 경계 안에 사람을 매장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물루스를 거론하는 것은 내게 다소 무모해 보인다." 한편 안사 통신(ANSA)이 인용한 알폰시나 루소 관장은 "이 지하 제단이 라피스 니게르 근처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의 '무덤'이라기보다는 '로물루스를 기리는 기념물', 즉 공묘(위령비, cenotaph)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쌍둥이와 늑대
로물루스와 레무스… 리비우스(기원전 59~서기 17), 오비디우스(기원전 43~서기 17), 플루타르코스(서기 46~125) 같은 고대 저술가들에 의해 널리 알려진, 늑대에게 젖을 먹인 두 쌍둥이의 이야기—늑대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는 언제나 역사학자들의 논쟁거리였습니다. 독일의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은 이 쌍둥이 설정을 로마의 두 집정관 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탈리아의 에토레 파이스(Ettore Pais, 1856~1939)는 평민과 귀족 간의 대립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고고학자 안드레아 카란디니(Andrea Carandini)가 이끄는 연구팀이 포룸의 미완전하게 조사된 구역에서 큰 돌로 표지된 깊고 긴 도랑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 전설의 한 단면이 고고학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카란디니는 이것이 바로 로물루스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성스러운 경계선' 포메리움(pomoerium)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로물루스의 죽음 역시 신화와 현실 사이에서 오갑니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에 따르면, 그는 분노한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당한 뒤 시신이 토막 내어 도시 곳곳에 흩어졌다고 합니다. 이 이론은 시신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즉 무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합니다.
AFP 통신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