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아소카람 사원(Wat Asokaram): 수코타이 남쪽의 연꽃 봉오리 체디 유적

입지와 일반 현황

아소카람 사원(Wat Asokaram) 유적은 수코타이 구도성 남쪽 성벽 바깥, 남동쪽 해자 코너와 일직선상에 놓인 지점에 자리한다. 남쪽 해자에서 약 650m 떨어져 있으며, 수코타이의 남문인 나모 문(Namo Gate)에서는 남동쪽으로 약 900m 거리이다. 또한 폰멘 사원(Wat Phong Men)에서 남쪽으로 100m, 물랑까 사원(Wat Mumlangka)에서 남쪽으로 450m, 위한통 사원(Wat Wihan Thong)에서 서쪽으로 약 4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수코타이는 프라탁 산맥 동쪽 기슭의 강변 단구(河岸段丘) 평야에 자리한다. 이 일대에는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운반한 토사, 자갈,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산기슭에서는 동쪽 욤강(Yom River) 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며, 욤강은 옛 도성에서 동쪽으로 약 11km 떨어져 있다. 남쪽에는 직선으로 흐르는 클롱사오허(Khlong Sao Ho)가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메람판 운하(Mae Lamphan Canal)가 도시를 감싸며 현재의 수코타이 주(府) 부근에서 욤강으로 합류한다.

한편 옛 도성과 욤강 사이 지역은 습지로서 정기적으로 홍수를 겪으며, 일부 지역은 몇 달씩 물에 잠히기도 한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이 수코타이 구도성이 강변 평야에 자리 잡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추정된다.

해발 고도

해발 63미터

주요 수로

클롱사오허(Khlong Sao Ho), 클롱양(Khlong Yang), 욤강(Yom River)

지질 조건

수코타이가 위치한 프라탁 산맥 동쪽 기슭의 단구 평야 일대는 페름기와 트라이아스기에 형성된 퇴적암 산맥으로, 여러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곳 토양은 산에서 물에 실려 온 흙·자갈·모래의 퇴적층으로, 매댕 토양 계열(Mae Taeng series: Mt)에 속한다.

고고학적 시대와 문화

역사 시대 / 수코타이 시대 후기(불기 1942년경)

유적의 성격

종교 시설(사원)

유적 개요와 발견된 비석

아소카람 사원은 원래 마을 사람들에게 '왓살랏다이(Wat Saladdai)'라 불렸다. 태국 예술국(Fine Arts Department)은 1955년 이 절터에서 비석을 발견했다. 이 비석은 난간(parapet) 형태로 양면에 총 98행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첫째 면에 47행, 둘째 면에 51행이며, 수코타이 문자와 크메르 문자로 기록되었고 내용은 태국어와 팔리어로 되어 있다.

첫째 면의 명문은 마하따마라차 2세(Phra Maha Thammaracha II, 파야루에타이) 왕의 왕비인 시쭐랄끄(Si Chulalak) 공주가 아소카람 사원에 스투파를 안치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둘째 면에는 팔리어 교육을 받은 시인 시리담마트리록(Sridhamma Trilok)이 언급되어 있다. 그는 아소카람 사원에서의 공덕 행위와 더불어 쭐랄끄 공주의 모습과 신분, 나이를 지닌 완전한 인격체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읊었다.

비석의 역사적 가치

이 비석을 통해 쭐랄끄 공주, 즉 마하따마라차 2세(파야루에타이)의 왕비가 왓딱신나람(Wat Thaksinaram)과 같은 시기에 아소카람 사원이라는 가람(伽藍)을 창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마하체디(Maha Chedi)'라 불리는 프라마하탓(Phra Mahathat)을 봉안한 대탑을 축조했으며, 비하라(강당)와 몬돕(mondop), 탑을 짓고 스리마하보리수를 안치하는 데 무려 4개월이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절의 수호자를 임명하고, 절에 바치는 토지(칼파나, Kalpana)와 예속민(노비)을 지정하는 등의 조치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 남아 있는 대형 주탑 즉 연꽃 봉오리 모양의 체디(chedi)가 창건 당시의 본체임을 알 수 있다. 대형 주탑 하나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작은 체디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일부는 동일 시기에 만들어졌겠지만 상당수는 이후에 추가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사크차이 사이싱, 2004).

사원 배치와 건축 양식

사크차이 사이싱(Sakchai Saising) 교수(2004)에 따르면, 사원 배치는 연꽃 봉오리 꼭대기를 얹은 체디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주탑 뒤편에는 작은 몬돕이 자리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비석에 대탑·비하라·몬돕·탑이 언급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 대칭을 이루는 중심축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반면 남쪽 면에 늘어선 여러 체디는 배치가 대칭을 이루지 않아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경계는 길이가 폭의 두 배인 긴 직사각형 해자(50×90m)로 둘러싸여 있어, 이 시기 특유의 배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연꽃 봉오리 체디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하부는 네 겹의 높은 단을 두른 받침 위에 연꽃받침 기단을 올리고, 여기에 유리구슬 장식 두 줄과 닭가슴살 모양 장식을 둘렀다. 중앙부는 '완파' 층이라 불리는 두 벌의 연꽃보 기단이 탑신(塔身)을 받치며, 활 모양 장식 없이 소박한 형태를 취한다. 최상부의 연꽃 봉오리는 깨져 떨어졌으나 지상에서 그 잔해가 확인되어, 통상적인 연꽃 봉오리 체디의 구조 순서와 동일함이 드러났다(사크차이 사이싱, 2004).

유적의 의의

수코타이 성곽 밖 남쪽에 사원이 들어선 사실은 이 방향으로 도시와 공동체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비석 기록은 연꽃 봉오리 모양 탑이 군주들이 세운 주요 대형 사찰에서 중요한 탑 형식이었음을 시사한다. 이 양식은 수코타이와 시삿차날라이의 주요 사찰에서 확인되며, 불기 20세기(서기 14~15세기) 무렵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사크차이 사이싱, 2004).

자료 정리·데이터베이스 관리: 와티니 타녬폴크랑(Watinee Thanompolk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