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피폴리스 거대 무덤의 미스터리, 마침내 베일을 벗다
그리스에서 발견된 웅장한 카스타 고분(Kasta Tumulus)이 누구를 위해 조성되었는지, 현장에서 출토된 세 개의 비문이 오랜 물음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2014년 9월 6일 암피폴리스 유적에서 발견된 두 개의 카리아티드(여상 기둥)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조각.
왕도 여왕도 아닌,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이 특별한 무덤의 주인공은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발굴을 이끈 그리스 고고학자 카테리나 페리스테리(Katerina Peristeri)와 건축가 미할리스 레판치스(Michalis Lefantzis)는 2015년 9월 30일, 1년 넘게 이어진 추측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 발표가 큰 관심을 모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원주 길이 497m에 달하는 이 인공 고분은 소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이며, 기원전 4세기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단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세 개의 비문이었습니다. '파레라본(parelavon, 수령했다는 뜻)'이라는 문구와, 두 개의 이니셜 형태로 새겨진 '헤파이스티온(Hephaestion)' 모노그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모노그램은 위대한 정복자의 친우이자 연인이었던 알렉산더 휘하의 장군 헤파이스티온이 이 웅장한 기념물의 수혜자임을 밝혀주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도굴꾼들이 이미 다녀간 무덤
발굴팀은 수개월 동안 수십 톤의 퇴적물을 걷어내며 고분 안에서 알렉산더 대왕 가족의 흔적을 찾기를 희망했습니다. 어머니 올림피아스일까요? 아내 록사네일까요? 아니면 아시아 원정 후 마케도니아로 돌아온 장군들 중 한 명일까요?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여러 차례 도굴당한 무덤 방 바닥 아래에서 발견된 것은 약탈당한 관의 초라한 잔해, 유리 장식품, 그리고 뼈 조각들뿐이었습니다. 이후 분석 결과, 이 유골은 노년의 여성과 갓난아기를 포함한 최소 다섯 명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스터리를 풀기에는 역부족인 셈이었습니다.
영웅을 기리는 영웅전(英雄殿)
유골의 신원은 유전자 분석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베일에 싸여 있지만, 발견된 비문들은 적어도 이 기념물이 누구에게 헌정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종식시켰습니다. 알렉산더는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친우이자 연인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스핑크스와 카리아티드로 장식되고 '페르세포네의 납치'를 주제로 한 대형 모자이크로 꾸며진 이 거대한 무덤을 세운 것입니다.
"이곳은 그의 영웅전(heroön)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페리스테리는 설명했습니다. 영웅전이란 영웅을 기리기 위해 무덤이나 위령비 위에 세워진 건축물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기원전 324년 에크타바나(현재의 이란)에서 헤파이스티온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알렉산더는 큰 충격에 빠졌고, 이듬해 본인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46~125)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자신의 건축가인 로도스의 디노크라테스(기원전 4세기)에게 제국 전역에 성역을 세워 사랑하는 장군의 기억을 기리도록 명령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헤파이스티온의 시신은 무덤 안에 안치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알렉산더 군대 전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바빌론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어 화장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새로운 단서를 찾아서
카테리나 페리스테리는 이 기념물의 연대 측정에 제기된 일부 비판에도 답했습니다. 그녀는 현장에서 발견된 파편적인 비문들이 이 건축물을 헤파이스티온과 연결하며, 고분 내부에서 알렉산더 시대의 동전이 출토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단서들은 다른 증거들과 함께 이 기념물이 기원전 325~300년경에 건설되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다만 기념물을 메운 흙은 그보다 나중의 것으로, 로마인들이 도래할 때까지 사용되던 이 건축물은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이 이렇게 덮어두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스 문화부 코스타스 타술라스 장관이 발표한 2차 발굴 조사가 곧 암피폴리스에서 시작될 예정입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카스타 고분'의 2헥타르 면적을 정밀 스캔하여 새로운 단서를 찾고, 추가적인 무덤의 위치까지 파악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