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앙탕트 코르디알(Entente cordiale, 우호 협약)'이 예상치 못한 문화 대여를 통해 한층 공고해졌다. 중세의 보물인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향후 5년 안에 영국으로 임시 대여되는 것이다.

바이외 태피스트리 상세 장면: 정복자 윌리엄(1027~1087)이 이끄는 노르만 함대가 잉글랜드 페번지(Pevensey) 해안에 접근하는 모습.
950년 만의 국외 반출
유명한 바이외 태피스트리가 마침내 프랑스를 떠난다! 2022년까지 이루어질 이번 일시적 대여는, 이 중세 미술의 아이콘이 무려 950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국경을 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영국 타임즈(The Times)의 보도에 따르면, 이 귀중한 유물은 영국에 대여되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1월 18일 목요일 열리는 제35차 프랑스-영국 정상회담에서 이 계획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태피스트리'라 불리는 이 작품은 사실 염색한 양모 실로 짜낸 직물이 아니라, 리넨 천 위에 수놓은 자수품이다. 길이 68.38m, 폭 50cm에 달하는 이 11세기 작품은 '마틸드 왕비의 태피스트리'라고도 불리며, 마치 거대한 만화처럼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9개의 패널을 하나로 이어 붙인 이 서사는 정복자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섬 침공 준비의 모든 단계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야기는 윌리엄의 경쟁자였던 해럴드 고드윈슨 왕(1022~1066)이 헤이스팅스 전투(1066)에서 패배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총 58개 장면에는 1,5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채널해협을 건너는 노르만 항해사들의 모습부터 전장의 혼란까지, 뛰어난 사실주의로 재현되어 있다. 훼손된 시체와 기병 돌격 장면 사이사이에는 천 가장자리에 우화에서 따온 듯 소박한 농촌 풍경이 배치되어 있고, 곳곳에 환상적인 생물들이 섞여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를 묘사한 바이외 태피스트리(칼바도스)의 상세 장면. 출처: Josse/Leemage/AFP
1476년 최초의 기록, 좁처럼 지켜진 보물
이 자수품의 존재를 언급한 최초의 문자 기록은 1476년의 것이지만, 제작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바이외(칼바도스)의 정복자 윌리엄 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이 귀중한 리넨 천은 지금까지 거의 옮겨진 적이 없다. 다만 나폴레옹이 1803년 잉글랜드 침공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 작품을 직접 보고자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에는 파리에 잠시 전시되었다가 다시 바이외로 돌아온 바 있다.
1970년부터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이 국보급 유물을 영국에 대여하기로 한 마크롱 대통령의 결정은, 과거 영국 전시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데 따른 것이다. 타임즈에 따르면 1953년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을 앞두고 한 차례, 1966년 헤이스팅스 전투 900주년을 맞아 또 한 차례 대여 요청이 있었지만 모두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영국인이 처음 보는 원본
현재로서는 영국 내 어느 곳에 전시될지, 대여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타임즈는 "런던과 파리 문화 당국 간의 수개월에 걸친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원본을 감상할 특권을 누리게 된다. 지금까지는 1885년 빅토리아 시대 자수공 35명이 제작한 복제품이 버크셔주 리딩 박물관(Reading Museum)에 전시되어 있었을 뿐이다.
브렉시트(Brexit)로 혼란스러운 시기, 테레사 메이 총리의 영국과 새로운 유대를 다지는 것—이야말로 '자수점(petit point)' 외교의 정수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