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700년 만에 빛을 본 보물, 아크레 함락 당시 침몰한 십자군 난파선에서 발견된 13세기 금화

이스라엘 북부 해안, 아크레(Acre) 만에서 13세기 난파선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선박은 1291년 맘루크 군대가 도시를 함락하는 과정에서 침몰한 십자군 배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700년 만에 빛을 본 보물, 아크레 함락 당시 침몰한 십자군 난파선에서 발견된 13세기 금화

1291년 십자군과 맘루크가 충돌한 아크레 함락 장면.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삽화

수중에 잠들어 있던 700년의 보물

선체 파편과 완목(ballast)으로 덮인 낡은 판자 사이에서 30여 점의 금화가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스라엘 아크레 해안에서 700여 년 동안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수중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것입니다.

하이파 대학 연구진인 에후드 갈릴리(Ehud Galili)와 미할 아르츠(Michal Artzy)에 따르면, 이 유물들은 유약을 바른 도자기들과 함께 십자군 전쟁 시대의 보물을 이룹니다. 이 유적은 1291년 아크레 함락 당시 도시에서 탈출하던 기독교 순례자들이 탑승했던 배의 화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700년 만에 빛을 본 보물, 아크레 함락 당시 침몰한 십자군 난파선에서 발견된 13세기 금화

아크레 해역의 13세기 십자군 난파선에서 출토된 플로린 화폐. ⓒ 이스라엘 고대유물청(Israel Antiquities Authorities) 제공

살라딘의 공세와 십자군의 아크레

2017년 3월 15일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Haaretz)에 게재된 글에서 연구진은 프랑크인들이 1187년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된 뒤 아크레 지역으로 옮겨왔음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아이유브 왕조의 초대 통치자 살라딘(Saladin, 재위 1174~1193)이 라틴 영토를 되찾기 위해 펼친 공세의 결과였습니다.

십자군 전쟁 전문 중세사 학자 알랭 드뮈르제(Alain Demurger)는 “제3차 십자군[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 ‘사자심왕’, 프랑스의 필리프 2세 ‘오귀스트’,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 — 편집자 주]과 합류하기 위해 티레에 집결한 뒤, 십자군은 1190년 아크레를 탈환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후 아크레는 라틴 국가들의 수도이자 국제 무역의 중심지, 각 종교 단체의 피난처로 번영했습니다. 반면 살라딘의 후계자들이 이끄는 아이유브 왕조는 주변 여러 공국에 거점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맘루크의 부상, 그리고 아크레 함락

그러나 125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이유브 왕조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지역의 지정학적 균형은 급변합니다. 캅카스, 러시아 동부, 투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데려온 전직 노예들로 구성된 군단, 바로 맘루크(Mamluk)가 권력을 장악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력은 성지에서 십자군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1289년 오늘날 레바논 해안에 위치한 트리폴리를 정복했습니다. 이어 이집트 술탄 알아슈라프 할릴(al-Ashraf Khalil)이 수만 명으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고 아크레로 진군했습니다.

700년 만에 빛을 본 보물, 아크레 함락 당시 침몰한 십자군 난파선에서 발견된 13세기 금화

아크레 성벽 앞에 대치한 십자군과 맘루크. ⓒ Josse / Leemage / AFP

수개월간의 포위전과 대탈출

1291년 3월 시작된 이 해양 도시의 포위전은 수개월간 이어졌습니다. 드뮈르제는 “5월,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마침내 함락되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도들은 해안으로 밀려났고, 절박하게 살길을 찾던 상인과 주민들은 항구의 배들, 특히 키프로스로 향하던 이탈리아 선박에 몸실기를 다퉜습니다.

역사학자는 “이 모든 사건은 연안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벌어졌고, 그 결과 많은 배가 침몰했다”고 덧붙입니다. 최근 발견된 난파선이 바로 그 배들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발견된 금화가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에서 주조된 플로린(Florin)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며, 승객들은 이 화폐로 선착료를 지불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700년 만에 빛을 본 보물, 아크레 함락 당시 침몰한 십자군 난파선에서 발견된 13세기 금화

아크레 해역에서 발견된 난파선. ⓒ 이스라엘 고대유물청 제공

성전 기사단의 최후

한편 도시 안에서는 성전 기사단(템플 기사단)이 끝까지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열흘간 맘루크 군대에 용감하게 맞섰으나, 결국 방어자든 공격자든 모두 요새 성의 붕괴 속에 함께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생장다크르(Saint-Jean d'Acre)의 함락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 라틴 세력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십자군 원정 계획이 세워졌지만, 어떤 것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잔해 아래에 남은 기억

2011년에는 고고학자들이 오스만 제국 시대 건물 아래에서 놀랍도록 온전한 상태의 십자군 도시 유적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아크레에서 싸웠던 전사들의 유해는 지금도 잔해 아래에서 잠들어 있을 것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아크레 함락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안토니오 무사라(Antonio Musarra)의 『아크리 1291: 십자군 국가들의 몰락』(Il Mulino 출판사, 2017, 이탈리아어)을 참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