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학(forensic science)에서 활용되는 기술을 응용하면, 선사시대 동굴 벽면에 남겨진 '네거티브 손(음화 손)' 그림의 제작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암벽화: 약 35,000년 전의 네거티브 손 그림이 재현된 암석 은신처 벽면(인도네시아).
수만 개의 손자국, 과연 누구의 작품인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동굴 벽에서 발견된 수만 점의 구석기 시대 손자국은 대체로 누구의 것일까요? 붉은 산화철이나 망간 검정 안료를 입에 물고 분무한 뒤 스텐실 방식으로 찍어낸 이른바 '네거티브' 손 윤곽입니다. 프랑스의 가르가스(Gargas), 아르헨티나의 쿠에바 데 라스 마노스(Cueva de las Manos),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El Castillo),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등 세계 곳곳에 남겨진 이 감동적인 흔적들이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 중 누구의 작품인지 — 남성일까, 여성일까, 어린이일까, 아니면 모두의 것일까 —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지 모릅니다. 법과학에서 쓰이는 한 가지 기법을 통해 손자국 제작자의 성별을 90%의 정확도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험적 재현: 전통적인 안료 분무 방식으로 제작한 네거티브 손. © Jason Hall / 리버풀 대학교
"손의 크기보다 형태가 성별을 더 정확히 알려준다"
"손의 형태와 크기에 기하형태계측법(geometric morphometry)을 적용한 결과, 놀라운 성공률을 확인했습니다."라고 프로젝트를 이끈 리버풀 대학교(영국)의 인류학자 엠마 넬슨(Emma Nelson)이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는 같은 대학교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 대학교의 생물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들이 함께 참여해 진행되었습니다.
기하형태계측법은 생물학적 구조든 아니든 구조물의 형태를 여러 지점을 서로 비교하며 분석하는 기술입니다. 연구팀은 현대인의 손바닥과 손가락에 19개의 측정 지점을 설정하고 각 좌표를 기록해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이 과정을 남성 53명과 여성 79명, 총 132명의 좌우 손 인쇄본에 동일하게 적용했습니다.
"이 접근법 덕분에 손바닥과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통념으로 여겨져 온 것과 달리, 손가락의 길이나 손의 크기보다 손의 전체적인 형태가 개인의 성별을 훨씬 더 잘 알려주기 때문입니다."라고 넬슨은 강조했습니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배치된 생체 측정 표지점. © Patrick Randolph
말닝 지수 등 다른 분석 기법들
실험실 환경에서 매우 높은 성공률을 보인 이 식별 방법은, 장식된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 속 손 그림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과거에는 말닝 지수(Manning's index) — 검지와 약지의 길이 비율이 개인의 성별을 나타낸다는 지표 — 를 활용한 기법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소속 선사학자들이 칼리마인(Kalimain)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오세아니아 지역 유적에서 시험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석 시스템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면서도 여전히 해독이 어려운 이 암벽화 작품들의 제작자 신원 규명 연구를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의식적·입문 의례적 성격이 유력하게 추정되는 이 선사시대 벽화의 가장 오래된 모티프는 무려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굴 환경을 재현한 조건에서 제작한 남성과 여성의 네거티브 손 실험 재현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