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상태가 탁월한 갈리아 시대 어린이 무덤들이 최근 프랑스 칼바도스주(Calvados) 조르(Jort)에서 발굴되었습니다.

2000년 전 아이들의 뼈가 고스란히
2000년이 넘은 어린아이들의 작은 뼈들이 최근 고고학자 빈센트 카르팡티에(Vincent Carpentier)와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연구팀의 손끝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놀라운 갈리아 공동묘지는 옛 요새 도시 팔레즈(Falaise)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조르 마을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도시는 중요한 갈로로만(Gallo-Roman) 도시로 알려져 왔지만, 우리는 카이사르의 정복보다 두세 세기 앞선 갈리아 시대의 위상 또한 결코 작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라고 카르팡티에는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번 어린이 묘지는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입니다. 이 지역의 고대 유적들은 18세기 이래 도굴 피해를 자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석회암이 지켜낸 가느다란 유골
작은 무덤들은 석회암을 파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이 기반 덕분에 신생아의 연약한 뼈를 포함한 골격이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조사된 수백 제곱미터 부지—곧 개별 주택 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는 네크로폴리스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고고학자들은 이미 기원전 70년경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 130구의 어린 유해를 확인했습니다.
“일부 아이들은 청동 브로치(옷핀)나 구슬, 그리고 아이의 체격에 맞춰 다듬은 가느다른 리그나이트(갈탄) 팔찌를 차고 있었습니다”라고 연구진은 전했습니다. 이런 부장품은 당시 이 화석 원료를 수출하던 유일한 지역인 잉글랜드와 갈리아 사이의 활발한 교역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열 곳 남짓한 희귀 유적
철기 시대 어린이 공동묘지의 발견은 극히 드문 사례입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약 열 곳 정도만 확인되었습니다. 전문가는 “갈리아인들은 사춘기에 이르지 못한 아이를 성인 묘지와 떨어진 별도의 묘지에서 화장하거나 매장하는 관행이 있었다”면서 “이는 종교적·우주론적 틀 안에서 자리 잡았겠지만, 미성숙한 아이를 ‘완성된’ 존재로 보지 않는 믿음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기독교화된 중세 사회에서도 이어져, 세례 전에 죽은 아이들은 별도로 매장되었습니다.

영아 사망률과 북서 갈리아의 번영
출토된 유골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부터 11세 아이까지 다양합니다. 덕분에 연구진은 분석할 만한 예외적인 표본을 확보했습니다. 초기 관찰 결과, 출산 직후 영아 사망률이 눈에 띄게 높았으며 그 비율은 17세기까지 알려진 수치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또 다른 갈리아 어린이 공동묘지의 자료로 더욱 풍부해질 전망입니다. 이번에는 셰르부르(Cherbourg) 지역 우르빌나크빌(Urville-Nacqueville)에 자리한 옛 항구 취락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유적들은 제2철기 시대(기원전 450~50년) 프랑스 북서부의 인구적·경제적 위상, 그리고 당시 갈리아와 잉글랜드에 거주하던 씨족 간의 상호 교류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