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아래 잠든 바이킹 도시의 비밀
덴마크 윌란반도 서해안의 리베(Ribe). 이곳의 땅속 깊은 곳을 파헤치는 발굴 조사는 8세기 초, '도시'라는 공간 자체를 모르던 세계에서 최초의 바이킹 시대 도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실체를 밝혀준다.

8세기 리베에서 구슬 장인들은 낡은 로마 모자이크 조각을 원자재 삼아 알록달록한 유리 구슬을 만들었다. 과연 이 귀한 재료들은 대체 어디서 들여온 것일까?
색색의 유리 구슬과 부적, 은화… 땅속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보물들은 덴마크 고고학자들이 윌란반도 서부 낡은 리베의 진흙 지하에서 최근 발굴해낸 수많은 유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리베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킹 도시로, 스웨덴의 비르카(Birka, 750년경)와 함께 당시까지 스칸디나비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 정착지였다.
현재 에스비에르(Esbjerg) 시에 속한 리베는 700년경에 건설되었다. 물가에 자리한 시장으로, 골목과 목조 부두를 갖춘 이곳은 훗날 바이킹들이 바다 약탈에 나서는 출발점이 되었다. 중세 전 기간은 물론 근세 초기까지도 리베는 북해와 발트해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3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리베의 바이킹 시대(8~10세기) 탄생 과정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초의 정착기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애초에 도시 생활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 땅에 리베는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덴마크 학자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땅속 3미터, '노던 엠포리엄' 프로젝트

지표면에서 3m 아래에 위치한 리베의 가장 오래된 바이킹 정착 지층 © Northern Emporium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오르후스(Aarhus) 대학교 고고학자들은 윌란반도 남서부 박물관 팀들과 함께 칼스버그 재단(Carlsberg Foundation)의 지원 아래 2017년 6월부터 오르후스 대학교 쇠렌 미카엘 신드베크(Søren Michael Sindbæk) 교수가 이끄는 '노던 엠포리엄(Northern Emporium)' 프로젝트를 통해 이 도시를 정성껏 발굴해 왔다.
'1970년대부터 대규모 조사를 통해 리베를 알고 있었지만, 가장 깊은 지층을 탐사하는 일은 우리에게 큰 이벤트입니다.' 연구진은 온라인 매체 비덴스카브(Videnskab)에 이렇게 밝혔다. 이번 발굴은 3D 레이저 스캔, DNA 분석, 토양 화학 분석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이 선구적인 도시 네트워크의 변천과 동학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베 바이킹 거주 지역을 기록·분석하는 데 쓰인 3D 스캐너 © Sarah Cross / Northern Emporium
무역 네트워크의 요람
리베와 같은 항구 도시는 방대한 무역망을 통해 항해술의 발전은 물론 바이킹 무역의 성장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피가 큰 화물을 실을 수 있고 외해 항해가 가능한 대형 선박의 등장, 그리고 처음에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스칸디나비아 내 교역에서 시작해 점차 더 먼 세계로 뻗어 나간 상업망이 그 증거다.
8세기부터 두 세기 이상, 중앙 권력 없는 이 사회는 발트해에서 잉글랜드를 거쳐 그린란드, 아메리카 해안, 아랍 세계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누비며 그 전 어떤 집단도 이루지 못한 폭넓은 교류를 펼쳤다. 그리고 리베에서는 바이킹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바닥 유구는 현재 지표면에서 3m 아래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우리는 10년 단위로 리베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지층을 통해 도시의 교역망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죠.' 연구진의 설명이다.
발굴 결과, 철공소와 무두질장, 빗살 제작자, 호박·금·은을 다루는 금세공인, 구리·주석·납 합금 장인 등 최초의 장인들이 하나둘 자리 잡은 흔적이 드러났다. '예컨대 초기의 빗살은 현지의 사슴 뿔로 만들어졌는데, 바이킹 시대의 문턱에 이르면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순록 뿔이라는 새로운 원자재가 등장하면서 빗살이 순록 뿔로 만들어집니다.'
로마 모자이크에서 중동산 구슬까지

리베 바이킹 지층에서 발견된 수많은 빗살 중 하나 © Northern Emporium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유리 구슬과 관련된 것이다. 고대 지층에는 알록달록한 구슬을 만들던 작은 작업장들이 다수 존재했으며, 그 원자재는 오늘날 독일에 해당하는 쾰른(Cologne)이나 트리어(Trier) 등 로마 도시의 무덤에서 회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모자이크 조각이었다. 이 생산 활동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이킹 시대가 본격화하는 800년경, 이 현지 생산은 갑작스럽게 끊긴다. 그 대신 중동에서 대량 생산되어 들어온 구슬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한다.

유리 구슬은 리베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유물로 무역의 지표가 된다. 9세기부터 구슬 대부분은 중동산이었다 © Northern Emporium
'이러한 결과는 북방 최초의 도시가 지중해 및 중동과의 본격적인 무역이 발달하기 훨씬 전에 이미 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16세기까지 명성을 이어온 리베는 이후 연이은 비극에 시달린다. 1580년의 대화재, 17세기의 심각한 홍수, 그에 이은 페스트 창궐, 마침내 항구의 퇴적까지. 이러한 재난들이 겹치면서 도시의 발전은 크게 주춤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