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프랑스 아미앵 발굴 현장서 흑사병 집단 매장지 발견…100구 이상 유해 확인

프랑스 솜주(Somme) 아미앵(Amiens)에서 예방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던 중, 수백 구의 유해가 담긴 역사적인 무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프랑스 아미앵 발굴 현장서 흑사병 집단 매장지 발견…100구 이상 유해 확인

아미앵 옛 오텔디외(Hôtel-Dieu) 부지에서 진행된 예방 고고학 발굴 과정에서 흑사병 희생자들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유해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이만큼 많은 양의 유해를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브 르브셰넥(Yves Lebechennec)이 말했습니다. 하필 오래된 차고 부지에서였습니다. 아미앵 메트로폴(솜주) 고고학 서비스 소속인 그는 도시 한 구획의 예방 발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특별한 구덩이들을 발굴했습니다.

강변에 자리한 옛 오텔디외 정원 일대, 1940년 독일군 폭격으로 파괴된 중세 건물 주변에서 다수의 집단 매장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약 1,500㎡ 부지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엘로디 자들로(Elodie Jadelot) 고고인류학자는 "이것들은 위기 시기의 무덤으로, 높은 사망률을 낳은 대규모 전염병 유행 당시 급하게 판 것"이라며 "아마도 흑사병 발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장 조사를 총괄하는 리샤르 조벨(Richard Jonvelle)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사용된 묘지가 이 일대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외곽 지역에서 이런 구덩이들이 줄줄이 발견된 것은 큰 놀라움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르브셰넥은 "묘지와 무덤을 모두 합치면 이미 100구가 넘는 개체가 확인되었으며,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유해가 나올 것이 확실하다"고 전망했습니다. 여러 층으로 겹쳐 안치된 시신들은 핀으로 고정된 수의에 싸여 매장되었는데, 대량으로 출토된 철제 고정핀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1230년부터 이어진 오텔디외의 역사

123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오텔디외는 성직자들이 운영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으로서 17세기까지 기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떻게 갑자기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인구를 수용하는 장소가 되었을까요?

아미앵 시 역사 기록 보관소의 자료가 단서를 제공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1632년 "시 당국은 오텔디외에게 모든 흑사병 환자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엘로디 자들로는 "분명 방역선을 형성하고 격리 조치를 시행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그래서 이 구덩이들에서는 모든 연령대와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흑사병에서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프랑스 아미앵 발굴 현장서 흑사병 집단 매장지 발견…100구 이상 유해 확인

흑사병 매장 구덩이에 정렬된 시신들. © SSAM Amiens-Métropole

드문 '위기 매장'이 주는 연구 기회

위기 상황에서 이뤄진 집단 매장은 매우 희귀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아미앵 사례를 천운 같은 기회로 여깁니다.

엘로디 자들로는 "당시 최고 부유층을 포함한 아미앵 주민 대부분이 이 파괴적인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매장지의 인구 집단과, 영양 결핍 흔적이 남아 있는 빈민들로 구성된 묘지의 전형적인 집단을 비교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르브셰넥은 "이번 조사의 또 다른 의미는 집단 사망을 관리하기 위한 대규모 조직 체계가 존재했음을 확인한 점이다. 당국이 이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에 대비해 적응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신들은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샤를 슈미트(Charles Schmidt)가 근현대사 학술지(1900년)에 발표한 논문 속 아미앵 관련 역사 기록도 이러한 진술을 뒷받침합니다. 해당 문서에는 "1633년 흑사병이 도시를 유린했고, 주민들이 대량으로 사망했으며, 질병에 가난과 기근까지 겹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는 300명이 넘는 환자가 오텔디외에 수용되어 있었고, 매일 밤 6~7가구가 추가로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또한 "3년간의 흑사병이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을 완전히 황폐화시켰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40m 길이 건물 유적도 발견

이러한 구덩이들 외에도 길이 40m에 달하는 건물의 유적이 땅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8월에 착수된 이번 발굴은 도시와 강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연말까지 완료될 예정입니다.


※ 참고: 본문 내용은 샤를 슈미트(Charles Schmidt)의 「1632~1636년 쉬블레 드 누아예(Sublet de Noyers) 군대 재무 총감의 역할과 권한」에서 발췌되었습니다. 『근현대사 저널(Revue d'histoire moderne et contemporaine)』 1900년 제2권 제2호, 156~175쪽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