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바이킹 유골 DNA 분석 결과, 전설 속 이들 전사가 모두 노르드인(북유럽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바이킹 세계(8~10세기)와 유전자 흐름을 보여주는 예술적 재현: 바이킹 전사와 그의 노예
운동선수처럼 다부진 체격에 칼을 물고, 용 머리 장식을 단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인들… 마을과 시골을 불태우고 약탈하는 피에 굶주린 포식자… 스칸디나비아 출신으로 알려진 바이킹은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200여 년 동안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고 전통적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영화와 TV 시리즈가 지나치게 과장하면서 특정 허구가 현실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전사이자 항해사, 모험가, 상인, 약탈자, 나아가 노예상으로까지 불리는 이들이 실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올바르게 파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바이킹 시대 매장지에서 발굴된 수백 구의 유골
2020년 9월 16일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이번 대형 분석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연구로, 최근의 발견 성과들을 바탕으로 바이킹의 실체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90여 명의 공동 저자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영국,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러시아, 그리고 그린란드에 이르는 다양한 바이킹 시대 유적지와 대묘지에서 수집한 남녀노소 수백 구의 인골에서 추출한 고대 DNA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본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사이로 한정된 것으로 여겨졌던 이들 북방 침입자의 역사가 일부 수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바이킹'이 이 지역 출신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대이동이 남긴 유전적 흔적을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항해의 민족인 바이킹은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 러시아부터 아메리카까지 바다를 누볐습니다. 출처: Werner Karrasch / 로스킬레 바이킹 선박 박물관
"바이킹 정체성은 스칸디나비아 혈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코펜하겐 대학교(덴마크) GLOBE 연구소 소장이자 룬드벡 재단 지오제네틱스 센터를 이끄는 저명한 고대유전학자 에스케 빌러슬레프(Eske Willerslev)가 주도한 6년간의 집중 연구 끝에 답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바이킹이라는 정체성은 스칸디나비아 유전적 혈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소속으로 바이킹 시대 전문가인 고고학자 뱅상 카르팡티에(Vincent Carpentier)는 "이번 분석을 통해 바이킹과 관련된 통념과 고정관념, 그리고 중세 초기의 민족 구분이 재조명되고 재검토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선구적인 연구 결과가 입증하는 것은, 바이킹 역시 당대 모든 유럽 인구집단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다양한 특질을 이미 지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도나우 강 유역 신석기 시대 농부로부터, 약탈 과정에서 끌려온 노예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어두운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의 '불타는 나이알'
유전자 속에는 바이킹 시대 이전과 도중에 일어난 이주와 교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유전학은 그들이 결코 다 키 크고 금발에 파란 눈의 사내들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이킹의 세계는 훨씬 더 이질적입니다"라고 이번 연구의 주요 공동 저자인 툴루즈 3세-폴 사바티에 대학교 분자인류생물학·합성영상연구소(AMIS) 소장이자 고대유전학자 뤼도비크 오를랑(Ludovic Orlando)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갈색 머리나 붉은 머리를 가진 이들도 그들 사이에 분명 존재했습니다. 뱅상 카르팡티에 역시 덧붙입니다. "13세기 아이슬란드 사가에 등장하는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이, 어두운 피부와 검은 머리 때문에 '불타는 나이알(Njáll)'이라 불리지 않았습니까?"
이 방대한 조사가 그려내는 그림은, 북유럽의 다른 섬·해안 인구집단들도 바이킹 원정에 적극 동참했다는 사실입니다. "픽트족, 오크니인, 발트인, 앵글로색슨인이 참여했습니다"라고 캉 노르망디 대학교 고대·중세 고고역사연구센터(CRAHAM) 연구원이기도 한 카르팡티에는 설명합니다.
영국 도싯 주 유적지에서 발견된 약 50구의 참수된 바이킹 집단 매장지. 출처: Dorset County Council / Oxford Archaeology
이 유전학 분석에 따르면, 예컨대 스코틀랜드의 바이킹 매장지에서 출토된 두 개의 유골은 바이킹의 습관과 풍습 일부—특히 바이킹 검과 함께 매장되는 방식—를 받아들여 바이킹식으로 장례된 현지인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노르드인과는 유전적으로 섞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함께 싸우고 함께 목숨을 잃은 전사들 사이에도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유전적 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혈연 관계 외에도 문화가 이 모든 인구집단을 하나로 묶어주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뤼도비크 오를랑은 덧붙입니다. 우리는 9세기 후반 바이킹 전사들의 모집 범위가 매우 광범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노르망디의 롤로(Rollo) 군대에 속한 많은 바이킹은 스칸디나비아가 아니라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실제로 북극에서 지중해까지, 러시아에서 북아메리카까지 개인과 유전자의 거대한 혼합이 일어났습니다." 발트해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이 유전적 혼합은 바이킹 시대의 북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하나로 이었습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의 유전적 다양성과 이웃 민족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밝혀낸 이 방대한 고대유전학 분석은, 에스케 빌러슬레프의 말대로 기존의 역사 교과서 내용을 갱신하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