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흑사병의 신비한 기원, 고대 DNA 분석으로 마침내 밝혀지다

오늘날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한복판에서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의 출현을 보여주는 새겨진 치아와 묘비들이 그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유럽 인구의 절반을 몰살시키기 8년 전의 일입니다.

흑사병의 신비한 기원, 고대 DNA 분석으로 마침내 밝혀지다

오늘날 키르기스스탄의 톈산산맥 풍경.

6세기 넘게 미궁 속에 잠겨 있던 수수께끼가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드디어 풀렸습니다.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치아의 DNA 분석 결과는 명확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팬데믹인 흑사병은 오늘날 키르기스스탄에 해당하는 중앙아시아의 한 호숫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역병'을 언급하는 묘비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중앙아시아

연구 제1저자이자 독일 튀빙겐 대학교 연구원인 마리아 스파이루(Maria Spyrou)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는 흑사병의 원점이 된 균주를 찾아냈고, 정확한 연도까지 밝혀냈다. 바로 1338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현재의 키르기스스탄 북부, 톈산산맥 일대에는 두 개의 기독교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개 세기 넘게 지난 1892년, 푸르고 붉은 풀이 산기슭을 덮고 있는 추이(Chuy) 계곡 한복판에서 고고학자들이 약 30여 기의 무덤을 발굴했습니다. 묘비에는 고대 동방 언어인 시리아어 비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연구진에 따르면 1338년과 1339년의 매장지가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점이 확인되었고, 상당수가 '역병(mawtānā)'을 언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당시 이 단어가 어떤 전염병이든 가리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8년 뒤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을 쓸어버린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흑사병의 신비한 기원, 고대 DNA 분석으로 마침내 밝혀지다
키르기스스탄 추이 계곡 카라지가쉬(KaraDjigash) 유적 발굴 현장. 이 발굴은 1885년부터 1892년 사이에 진행되었다.
출처: A.S. 레이빈(A.S. Leybin), 1886년 8월

DNA가 밝힌 흑사병 세균의 정체

연구진은 무덤에서 발견된 유골에 주목했습니다. 연구 공동 제1저자이자 영국 스털링 대학교의 역사학자인 필립 슬라빈(Philip Slavin)은 과학지 사이앙스 에 자방(Sciences et Avenir)에 "연구팀은 이 공동체 출신 개인 7명 중 3명의 치아에서 페스트균(Y. pestis)과 일치하는 DNA를 발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치아가 "사후에도 비교적 잘 보존되며, 혈류 속 병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생물유전체학 연구진은 이러한 DNA 흔적들을 조합해 결론을 내릴 만큼 충분히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슬라빈은 "드디어 묘비에 기록된 역병이 실제로 페스트, 즉 흑사병에 의해 발생했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흑사병균의 '직계 조상'

발견된 DNA에 따르면, 이들 고대 키르기스인의 '역병'을 일으킨 세균은 훗날 지중해를 건넌 세균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직계 조상이었습니다. 슬라빈은 "분석 결과 1338~1339년의 세균 게놈이 '빅뱅' 바로 직전의 분기점에 위치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빅뱅'이란 최초의 페스트균(Yersinia pestis) 균주로부터 서로 다른 4개 균주가 갈라져 나온 사건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14세기 추이 계곡 고대 공동체의 '역병'을 일으킨 것이 바로 그 초기 균주였습니다.

흑사병의 신비한 기원, 고대 DNA 분석으로 마침내 밝혀지다

페스트 희생자 중 한 명인 산마크(Sanmaq)의 묘비. 시리아어로 새겨진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649년[=1337-8년], 튀르크어로 '바르스(Bars)'라 불리는 티그리스의 해에. 믿는 자 산마크의 무덤이다. [그는] 역병(mawtānā)으로 죽었다."
출처: A.S. 레이빈(A.S. Leybin), 1886년 8월

주요 용의자는 '마멋'

연구자는 같은 지역에서 이 균주의 조상들도 함께 발견된 점을 근거로, 페스트균이 아마도 톈산산맥 일대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유럽에서와 달리 병을 옮긴 용의자는 쥐가 아니었습니다. 슬라빈은 "페스트는 인간의 질병이 아니다. 페스트균은 주로 야생 설치류에서 번성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최대 용의자는 이 지역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마멋(marmot) 개체군입니다. 이후 "자연 재해, 기온과 강수량의 급격한 변화" 같은 환경 요인들이 인간에게의 전파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제시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아직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페스트균의 4개 '빅뱅' 분기 가운데 단 하나만이 서유라시아로 이동해, 톈산 지역 유행병 8년 후 우리가 아는 그 끔찍한 팬데믹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거쳐 전파됐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논문에서 "선행 연구들은 전쟁이나 교역 네트워크가 페스트균 확산의 주요 통로였음을 시사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1346년에서 1358년 사이, 흑사병은 지중해를 건너 유럽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팬데믹의 서막을 연 파도였습니다. 이 재앙은 19세기 초까지 무려 500년간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유럽 인구의 50%를 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