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랄프 조르다노: 나치 박해를 견뎌낸 기자·작가, 평생 침묵하지 않은 목소리

랄프 조르다노(Ralph Giordano)는 나치 시대의 박해를 몸소 견뎌낸 생존자이자 텔레비전 기자, 소설가, 그리고 결코 침묵하지 않던 논객이었다. 함부르크의 지하 은신처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은 독일 현대사 그 자체였고, 그 시절의 경험은 평생 그의 글과 방송을 관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치 시대의 공포가 그를 만들었다

조르다노는 1923년 3월 20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칠리아 출신 음악가였고 어머니는 독일계 유대인이었으며, 에곤(Egon)과 로코(Rocco)라는 두 형제가 있었다. 평온했던 어린 시절은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끝이 났다.

유대인 가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조르다노는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게슈타포에게 여러 차례 체포되어 고문까지 당했다. 훗날 한 신문 인터뷰에서 가족이 독일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는 가난했다. 독일을 떠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추방의 공포 속, 은신처를 전전한 가족

1943년 폭격 이후 조르다노 가족은 함부르크를 떠났지만, 비난을 받으면서 다시 한자 도시로 돌아와야 했다. 어머니가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은 여러 은신처를 전전했고, 목숨을 걸고 그들을 숨겨준 이웃 덕분에 어머니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가족은 마침내 1945년 5월 4일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동독으로 건너갔다가, 스탈린주의와 결별하다

전쟁이 끝난 후 조르다노는 언론인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독일 유대인 중앙위원회를 대신해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하기도 했다. 그는 1946년 독일 공산당(KPD)에 입당하고 1955년 동독으로 이주했으나 불과 2년 만에 연방공화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당은 언제나 옳았다』(1961) 같은 저술을 통해 스탈린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다.

1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남긴 텔레비전 기자

그의 방송 경력은 1960년대 초 NDR과 WDR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는 100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소수민족 문제 전문가로서 자신의 전기를 바탕으로 나치 시대와 스탈린주의를 다루는 한편, 『슬럼—인류의 뒷마당』, 『굶주림—삶의 도전과 죽음』 같은 작품으로 개발도상국의 현실도 조명했다. 특히 『굶주림』으로 1968년 그림메 텔레비전상을 수상했다.

가족사를 그린 소설 『베르티니 가문』

1982년 출간된 『베르티니 가문(The Bertinis)』은 부분적으로 자전적인 소설로, 국가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함부르크의 한 가족을 그렸다. 거의 40년에 걸쳐 손질해 온 이 책을 통해 그는 자신의 가족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1988년 ZDF가 이 소설을 영상화했으며, 시민적 용기를 기리는 연례상인 '베르티니상' 또한 이 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상은 전통적으로 국가사회주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추모일인 1월 27일에 시상된다.

논란도 피하지 못한 논객

그의 인생 경험은 늘 그가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동기였다. 1990년대에도 『두 번째 죄책』, 『독일인으로 산다는 짐』 같은 책에서뿐 아니라 당대 정치 현안에 대한 논평을 통해 끊임없이 발언했다. 그는 독일 내 소수자의 위치, 최근의 독일 역사, 이스라엘과 유대교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2007년에는 쾰른 모스크 반대 시위에 참여해 비판을 샀고, 2010년에는 틸로 사라칭(Thilo Sarrazin)의 『독일은 스스로를 폐지한다』의 주장을 지지하며 이슬람 통합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1년 뒤에는 공개 서한을 통해 통일 2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개념상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 크리스티안 불프(Christian Wulff, CDU)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우익 극단주의를 경고하다, 그리고 죽음

이슬람 통합 문제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조르다노는 평생 독일에서 커져가는 우익 극단주의의 위험을 반복적으로 경고했다. 그 역시 2006년 헨리 네넨상(Henri Nannen Prize) 시상식에 모습을 비추는 등 수많은 상의 주인공이었다. 호전적이었던 그의 목소리는 2014년 12월 10일, 91세의 나이로 쾰른에서 생을 마감하며 멎었다.